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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벚꽃이 흐물흐물한 버찌로 변했을 때쯤인가, 나는 길 건너 약국을 찾았다. 

2000년대 중반에 지어진 듯한, 상가와 원룸을 겸한 전형적인 건물 1층에 자리한 약국의 분위기는 건물의 외관과 다소 이질적이었다. 꽤 깔끔해보이는 건물 디자인에 비해, 약국엔 한약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상자들이 가득했고 약사님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었다. 구매 목적을 생각하면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느릿느릿, 하지만 직업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태도의 약사님 곁에는 부부인 것이 확실한 사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난 들어선 지 30초도 되지 않아 그 사모님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약사님을 대하는 사모님의 태도가 지나치게 만화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꼬박꼬박 '약사님' 호칭을 하는 것은 물론, 약사님의 모든 행동에 지근거리에 위치하면서도 약사님의 동선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도왔다. 심지어 약봉투에 약을 넣는 것까지. 그냥 사모님 본인이 봉투에 넣어 손님에게 줘도 될 것을, 그냥 직접 카드를 긁고 영수증을 주면 될 것을, 희한하게도 사모님은 일처리는 거의 다 하고 마무리는 꼭 약사님에게 맡겼다. 이건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아니라, 그냥 목구멍에 넣어주고 턱을 위 아래 위위 아래로 움직이기만 하면 될 수준의 조력이지 않은가. 어지간해선 볼 수 없는 재밌는 광경에 나는 노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구경했다. 동년배의 나이로 보이는 어르신 손님들이 많은 덕에 대기시간은 꽤 길었다.

한참을 구경하자니, 벚꽃은 이미 길바닥의 쓰레기로 변했지만 일본 만화의 흐드러진 벚꽃이 떠올랐다. 벚꽃 아래 시골 저택, 무릎자세로 남편을 대하는 부인과 '고슈진'이란 낯간지러운 말을 써가며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한없이 저자세인 듯한 태도까지. 건물도, 사람도, 삼성페이로 결제가 되는 포스기까지 모두 시간은 정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이 두 분은 마치 쇼와시대에서 훅 넘어오신 분들 같았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겨졌다는 점이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이 떠오르니 괜시레 무냐무냐한 생각이 발그레 떠올랐지만, 지나간 추억에 참교육 당하는 것은 일상을 유지하기에 썩 좋은 일이 아니다. 고개를 휘젓고 계산대로 나아갔다. 구매 목적을 밝히자 약사님께 잠시 잔소리를 들었으나, 어쨌든 무사히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약사님은 "잘가요"라며 흔한 동네 인심좋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려주셨다. 한 발 늦은 타이밍에 "안녕히가세요"라는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계신다. 황송하나이다, 라는 어투가 어울릴만한 광경이었다.




약사님을 다시 뵌 건 그 근처의 편의점에서였다. 자전거에 무거운 물을 실어가시려는 약사님을 잠시 도와주며 말을 걸 수 있었다. 누군가를 완력으로 도와줄 입장이나 처지가 되지 못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70이 넘으신 할아버지보단 아주 약간은 나아 체면치레는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약사님은 박카스를 건네며 잠시 의자에 앉으셨고, 나는 그 때의 궁금했던 바를 물었다.

약국의 개업년도는 무려 1962년. 반세기를 확실히 넘어선 곳이었다. 62년도엔 쏘오련과 천조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불었고, 이탈리아에선 카톨릭의 대개혁을 이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고,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했고, 칠레에선 월드컵이 열렸으며, 우리나라에선 제3공화국이 시작된 해다. 뭐가 됐든 까마득하기만 한 연도다. 그동안 약국의 건물은 두 번 새로 지어졌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드나드는 단골 손님은 딱 다섯 분만 남아계신단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어르신의 이야기와 나의 일상에서 공통점이라고는, 약국일도 이젠 지겨워서 빨리 그만두고 싶으시다던 한 마디 밖에 없었다. 젠장, 70살이 넘어도 일은 지겹기만 하다니. 40년 이상 남은 생애가 깜깜한 절벽 같기만 하다.

내가 쇼와의 이야기에 잠시 젖어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사모님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이셨단다. 정확히 말하면 사모님의 부모님이 돌아가지 않으셨고, 쇼와의 분위기와 풍습은 그 가정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사모님은 지금도 아주 가끔, 명절정도 되면 유카타를 입으신다고. 약국 개업년도와 결혼식 년도가 같다는 할아버지의 멋쩍은 웃음에서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부부의 신뢰가 느껴졌다. 

오그라드는 말과 행동이 험난한 세월을 헤쳐오며 쌓인 신뢰가 엑기스 가득 담긴 결과였다는 것, 슬쩍 본 것만으로도 느꼈던 것이나, 어르신과의 짧은 대화에선 느끼다 못해 어디를 잠깐 갔다올만큼 잔뜩 느껴졌다. 무릎을 꿇거나 속옷부터 겉옷까지 입혀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타파해야 할 풍습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신뢰가 요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식이 신뢰를 만드는 척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 

어디까지 롤플레잉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즐거운 것이지만, '조건없는 대화'라는 말처럼'완벽한 관계'라는 말은 섬뜩하게 공허하다. 맞춰간다는 말도 그렇다. 퍼즐도 아니고 뭘 맞출 수 있는가. 코 앞에 있는 사람의 귀여운 볼을, 적절한 강도와 각도의 손바닥으로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늘.

하지만, '고슈진사마'란 말을 들으면, 평소엔 일관되게 ㅣ의 형태를 유지하던 육체가 갑자기 ㅏ가 되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분명 세상엔 많다. 나는 논외로 치자. 내가 그러한가 그러하지 않은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요식으로 공허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썩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식이 신뢰를 불러올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



생각해보니, 쇼와라는 연호에는 모든 신뢰가 와장창 무너졌던 기억이 담겨있다. 쇼와에서 신뢰를 도출해내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출발이었다. 어르신은 내게 관계가 주는 신뢰와 직업생활의 지루함 두 가지를 알려주셨는데, 떠나실 땐 후자만 남기셨다. 갓물주의 포쓰와 여유란 이런 것인가, 아득한 넘사벽에 다시한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갓물주의 위대함에 탄복한 나는, 잃어버린 신뢰찾기를 멈추고 하던 잉여짓이나 마저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거야 말로 메데타시, 메데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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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 마리  (0) 2017.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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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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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세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다. 


개묘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캐릭터가 명확하게 나뉘는 녀석들의 꼬라지를 지켜보자면 자못 우스운 생각이 들다가도, 동네의 대빵이 치즈(돼지)고양이 녀석의 무언가 오만하고 나른하며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면 열폭에 가까운 감정이 샘솟는다. 저 자식, 분명 방금 날 비웃은거지? 라며.


녀석의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벌써 몇 년을 본 건지 모르겠다. 녀석에게 딱히 밥을 주는 것은 아닌데 어디선가 알아서 잘 주워먹고 다니는지 예의 그 풍만한 풍채는, 단체로 식량난에 허덕여 수령님 만세를 부르는 북한 군인들처럼 날 보면 애교를 부리는 다른 동네 고양이 녀석들과는 달리, 놀랄만큼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그 풍채를 유지하는 게 자기관리인듯 했다. 

어디까지나 귀납적인 결론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녀석의 자기관리 비법은 예의 그 게으름이 아닐까 싶다.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극히 희박한 일이라, 한 겨울 담배피러 나와 벌벌 떠는 내 모습을 보며 하품만 쩍쩍 내뱉는 녀석에게 괜한 심술로 위협적인 포즈를 취해봐도 이내 고개를 돌리는 것이 고작이다. 녀석이 몸을 움직이는 때는 주로 두 가지인데, 무언가 먹을 것을 찾으러 가거나, 무언가 먹을 것을 가져온 동네 고양이를 삥 뜯거나. 

전자의 경우는 느릿느릿 슬금슬금, 한없이 잉여에 가까운 숫사자의 엉덩이와 비슷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하이에나를 줘패는 숫사자처럼 무섭기 그지없다. 여기서 다른 고양이가 등장할 때다.


전형적인 코숏인 또다른 동네 길냥이는 치즈대빵 녀석과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치즈녀석이 산으로 가면 녀석이 반대편에서 뿅하고 튀어나오고, 치즈 녀석이 다시 하산하면 녀석은 금새 괴도 루팡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치즈 녀석이 킹무성처럼 오만하고 게으르며 느긋느긋해서 사람의 열폭을 돋게 한다면, 녀석은 요리조리 살랑살랑 민첩하게 잘 피해다니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치즈녀석이과 코숏이가 누군가 먹다 버린 참치캔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쓰레빠 질질 끌며 담배피러 나온 나는, 그 즉시 의자를 가져다 앉고 참관을 시작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육중한 캐릭터보단 날렵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물론 더킹오브파이터의 김갑환과 장거한 중에선 장거한을 고르지만, 그 정도를 빼면 날렵한 캐릭터를 응원한다. 당연히 코숏이를 응원하며 패배할 치즈 녀석을 위한 육포를 준비했다.


그러나 4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 후 집에서 빈둥빈둥 노닥거리는 어느 아버지같던, 방금 세 끼를 부페를 다녀와 배가 불룩해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누워있는 내 친구같던, 겨울 방학숙제가 마감일이 내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저 빈둥거리며 "몰라 손바닥 맞고 말지"라 넘기던 내 과거같던, 사파리 암사자의 하렘 속에서 하품이나 하다가 관광객이 몰려드면 매너리즘에 가득찬 리액션을 하는 것이 고작인 숫사자같던 그녀석이, 놀랄만큼의 스피드와 광속 냥냥펀치로 코숏이를 제압하더니, 이내 그 육중한 체급으로 코숏이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신경전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저 녀석들, 꽤 심각하다.


아무튼 육포라는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던지며 시합을 종료시켰지만, 코숏이는 나름대로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육포를 입에 물고 고새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치즈녀석을 보니, 이 자식,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그 게으르고 오만한 표정으로 입에 묻은 참치 기름을 낼름낼름 핥고 있다. 녀석의 태연함에 부아가 치밀어올라 참치캔을 치워버렸지만, 이미 깔끔하다.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녀석이 누굴 줘 팰 때와 뭔가를 쳐묵할 때 만큼은 우사인볼트의 달리기나 아웃사이더의 랩핑보다 빠르다는 걸. 저 오만하고 게으른 모습이 사실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몹쓸 자식같으니라구.


그 뒤로 코숏이는, 전보다 더 치즈 녀석을 경계했다. 아니 이젠 치즈가 햇볕 좋은 오후, 따스한 햇살에 취해 조느라 고개를 꾸벅거릴 때, 사정없이 꾸벅거리는 졸린 눈을 어쩌다가 마주할 때면 부리나케 튀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전혀 힘을 주지 않은 눈빛임에도 누군가를 떨게 하는 힘, 노란치즈돼지녀석에게는 태생적으로 마초적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은 가끔씩 나도 희망하는 바이긴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가게에서 길냥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 고양이는 아니다. 만사가 귀찮고 잘 챙길 자신도 없는 나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연애도 안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두자. 


누구를 잘 챙길 자신은 없지만 치즈돼지녀석과 코숏의 관계가 인상에 남은 뒤로, 나는 새로 만난 길냥이를 눈빛으로 제압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했다. 8개월이 지났다. 녀석은 나름대로 잘 자라주었다. 오늘 나는, 유난히 까부는 듯한 녀석을 제압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잔뜩 찡그리며 위엄있는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말을 잘 들었다. 발 빝에서 식빵을 구우며 나를 올려다 본 채 경청중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 만족함과 흡족함이 피어올랐다. 짜식, 키운 보람있구먼. 내 얘기가 끝나자, 녀석에게서 냥냥펀치가 날아왔다.


고양이도 못 다루는 데 누군가와 원만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맺기란 애시당초에 틀렸다는 결론을 새삼 확인하며, 험난한 새디스트의 길을 걸으며 욕망을 성취하기 보다, 가까운 떡볶이 집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대충 떼우고 살자는 현자타임에 젖어본다. 아니, 조금 더 깊게 사유해보자면, 고까운 것을 보면 냅다 냥냥펀치를 후리는 녀석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현장을 보면 냅다 죽창을 후리는 열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이 거듭되는 가운데,

치즈녀석의 한심한 표정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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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님과 사모님  (0) 2017.12.27

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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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자를 잃어버린 블로그에 글을 쓴다는 것은 참 버거운 일이다. 항상 타인의 시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다니는 못된 습성 탓이다. 오롯이 자신의 의지로 가득찬 그녀의 모습에서 나는,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아득함을 느꼈다. 때때로 순간을 착각하고 문득 그때의 아득함이 불쑥 일어날 때가 있다. 

음, 독자를 잃어버렸기에 이런 글도 쓸 수 있는 거겠지.



#2


태생적인 게으름이 내면과 외면 구석구석을 가득채운 나는, 어지간해선 플레이리스트를 확 뒤집지 않는다. 1년에 한 두번, 그것도 플레이리스트가 꽉 차 기존의 곡들이 삭제됐다는 메시지가 뜰 때, 그제서야 무거운 손가락을 옮기곤 한다.

지난 가을에 플레이리스트를 정리했다. 무의식적으로 다음 곡 버튼을 누르며 운전하는 습관을 지닌 나는, "비오는 날엔, 모르는 노랜 듣고 싶지 않아"라는 가을방학의 <종이우산>처럼, 비 오는 날이 아니라 특별한 날과 특별하지 않은 날과 특별함과 특별하지 않음 그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대부분의 나날 모두 모르는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이 영 거북하다. 따라 부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그래서 유감, 또 유감이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듣는 듯한 김동률의 <동반자>를 들으면, 곡이 끝나고 몇 초 뒤 곱씹는 듯한 표정으로 "가사가 참 좋아."라는 말을 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취향이 아니기에 전주가 나오자마자 다음 곡으로 돌리는 자우림의 <파애>는, 힘들 게 대관령 길을 오르던 때 노래에 담긴 배경을 설명해주던 목소리가 떠오른다. 지드래곤의 목소리가 나오기 전에 돌려버리는 아이유의 <팔레트>에선, 그 날 내가 저질렀던 망언과 그녀의 화난 목소리가 떠오른다. 플레이리스트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아티스트인 샘 옥의 <love>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찌질함의 나락으로 빠져들던 내가 떠오른다. 우리 가족 모두가 좋아하게 된 넬의 <Standing in the rain>에선, "우울한 날엔 어떤 노래를 들어?"라며 이미 수차례 물었던 질문을 아무 생각없이 다시 건네던 끔찍한 광경이 떠오른다. 윤종신에 대한 기사를 쓰면서 내내 듣던 <좋니>는, 마지막 스캣 부분을 왜 마저 부르지 않냐며 농담을 건네던 그녀의 말과 함께, 또 역시 고속도로 안에서 윤종신의 찌질한 노래들이 흘러나오자 "넌 항상 이렇게 짝사랑하는 노래만 듣네?"라는 그녀의 예리한 지적에 대책없이 바보같은 대응으로 일삼던 때가 떠오른다. 듣기가 두려워진 짙은의 <안개>는, 희뿌연 바다에서 나즈막히 읊조리던 나와, "적절한 선곡이군."이라며 최대한의 칭찬을 하던 그녀가 떠오른다. 

조각조각 흩어진 기억들이 깜빡이도 안 켜고 불쑥 튀어나오며 나를 놀래킬 때가 있다. 정적에 가까웠던 일상에 균열이 생기고 익숙한 자괴감이 새어 들어온다. 그때에나 잘 기억하면서 살았을 것이지, 무의미하다는 표현을 붙이기에 그 잉크가 아까울 무게의 무의미한 되새김질. 그러나 항상 쓰는 성찰의 글은 진정성을 잃고 동어의 반복에 빠졌고, 그 인지부조화로 인해 결국 파국을 맞았던 것 모르지 않으나, 모르지 않으나, 모르지 않으나,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할 말이 없다.


#3


익숙한 곡에서 튀어나오는 기억에 몸서리치고, 고개를 뒤흔들다가, 그래도 안 되면 "연락 좀 해!"라며 소리치던, 마지막 인사로는 정말 최악이었던 그날 바로 다시 담배를 물었던 때처럼 라이터를 들고 바깥으로 나선다. 그러나 하루에 반갑 이상은 안 피겠다던 쓸모없는 다짐 때문인지, 기억이 제멋대로 뛰쳐나오는 횟수에 비해 열 개비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다소 애로사항이 꽃핀다. 

익숙하지 패턴이지만 다양한 공간에서 튀어나오는 애로사항이기에 처음엔 적응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무던해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치졸한 신조는 어디갔는지 조소만 흘러나온다. 그럼에도, 김윤아의 <비밀의 정원>은 참 받아들이기 어렵다.

어느날 그녀는, 그녀 답지 않게 "자우림 노래 중에 어떤 게 젤 좋아?"라고 물어왔다. 참 소중한 질문이었는데, 나는 "<미안해 널 미워해>도 좋고, <스물 다섯, 스물 하나>도 좋고. 근데 김윤아 솔로 앨범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아"라는, 번뜩임이라곤 1g도 없는 시시한 답변을 내놓고야 말았다. 말을 뱉자 마자 순간 당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바로 떠오르는 노래가 없었다. 나는, 그녀와 자우림과 김윤아에 대한 이야기를 그토록 많이 나눴음에도 불구, 김동률 노래를 줄줄이 읊을 때처럼 답변하지 못했다. 당황했다. 

<비밀의 정원>은, 조예는 깊지 않으나 10초 정도의 멜로디에도 가슴 속에서 바닷바람이 불어오며 가보지 않은 곳에 아이러니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아이리쉬 풍 노래다. 이 곡을 얘기했어야 했다. 바로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내 머릿속에 이 노래는 까마득히 지워져있었다. 

그 대화는 지극히 상징적이었다. 나는 딱, 거기까지였다. 나라는 개인이 가진 내면의 완성도도, 좋아하는 것을 위한 책임도, 사랑을 이야기할 만한 그릇도, 딱 거기까지였다. 그녀가 "잘 안 맞을 뿐이야."라며 호의적으로 해석해준 이유를 뜯어보면, 감정적 자해를 수백번 저질러도 지워지지 않을, 거기까지에 그쳐버린 나의 최대치에 맞닿아있다. 

고작, 고작이라고 밖에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이 퍽 슬프다.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지 못한, 되지 않은 사실이 퍽 애닳다.


#3


며칠전인가, 핸드폰 일정에 그녀의 생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삭제하는 것조차 귀찮은, 아니, 확인하는 것이 두려워 미뤄두기만 했는데, 오늘 낮 12시에 그녀의 생일이 화면에 가득차 요란한 알람을 울린다. 그렇게 강조하지 않아도 잘 알고 있는 것인데, 이것을 설정해놓은 자식을 찾아서 흠씬 두들겨패주고 싶다. 그 녀석이 과거의 나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고민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말 정도는 할 수 있지도 않을까?' 생일을 진심으로 챙기고 싶었던 과거의 나는 이미 역사가 되어버렸지만, 역사와 완전히 분리하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기에 옅은 설레임의 감정이 주책맞게 알싸히 퍼졌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말했다. "헤어진 사이에 다시 연락하고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을까?" 차분하지만, 단호하게. 이리도 생생히 기억이 나는데, 모른 척 하고 멍청한 짓을 저지를 수는 없는 일이다.

그깟 연락이 뭐 대수라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있어 '착오'나 '오류'였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들었다. 그렇다. 그녀가 내게 '오만하다'고 표현했던, 겸손하지 못한 자의식 과잉이 분명하다. 하지만 일말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소한 연락에 그녀의 평온함에 아주 자그마한 생채기, 아니, 불결함이라도 묻는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이것 저것 다 따지다가 모든 것을 놓쳐버린 것에서, 나는 어떠한 생산적인 결론도 얻지 못했다. 무신론과 다신론 사이에서 부정합한 줄타기를 하는 나는, 그래왔듯 속으로 그녀의 생일을 축하했다. 그 외 기타 조잡하고 쓰잘 데 없는 기원들과 함께. 어둠이 짙게 내린 이 시간 그 행위를 되새겨보니, 찌질함으로 점칠된 수많은 에피소드 중에서도 제법 손가락에 꼽을만한 짓거리임이 분명하다.

그래도 축하하고 싶은 걸 낸들 어쩌라고. 태어나 스쳐지났다 하더라도 이렇게 값진 기억을 남겨준 것에 감사한 것을 어찌하냐고.

하여, 그것 밖에 안 되는 인간인 것을 어찌하리오.


#4

괴롭지 않다고 얘기하기엔 다소간 참작의 여지는 있다고 생각한다. 잊었다고 말 하기엔 거짓의 비율이 크다. 일상엔 여러모로 타격이 생겼고, 독자를 잃어버린 글쓰기 역시 생기가 부족하다. <요괴봉투>는 내년 하반기에나 다시 쓰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망한 글인데 놓지는 못한다. 머리를 잘라볼까 했다. 그러나 또 그럴만한 결기도 없다. <사랑,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닐 마음의 사치>라지만, 사치스러운 기억을 도저히 놓지 못하겠다. 

그래. 퍽 괴롭다. 꽤 힘들다. 썩 괜찮지 않다. 일상에 그녀가 다시 들어오는 머저리같은 상상을 때론 하기도 한다. 괴롭고 그리워하는 것이야 나의 자유아니겠는가. 그 정도야 허용될 만한 찌질함이지 않은가.

하지만 추잡함만을 야기할 그 모든 행동을 절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 그나마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인간은 되는 듯하다. 



0.

다시 읽어보니, 그녀의 입장을 고려하는 구석이라곤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 이 글에서, 최소한의 양심을 찾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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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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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을 묻고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릴 줄 모르던 나는, 저들에게 우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나는 사소한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어떻게든 답을 스스로 찾아내려는 끈질긴 시도를 도외시한 채, 답지가 나오는 챕터에 손가락을 넣고 문제와 답지의 페이지를 와리가리하며 열심히 풀이를 외웠다. 그렇게 숙제는 대충 떼웠는데, 이름이 불러져 칠판에 풀이를 써갈 때엔 영락없이 답지를 봤다는 사실이 대뽀록,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저지른 학생으로 낙인받고 모두의 비웃음을 사곤 했다. 그 끝은 항상 나머지 공부로 귀결되곤 했으니, 모두가 떠난 교실, 창문을 파고드는 석양의 잔인한 조롱이 나를 비웃곤 했다. 

벌써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일이나, 인간이 대게 그렇듯 습관이란건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에도 늘 습관만이 자리하니, '습관이란 게 무서운거더군'이라 노래하던 롤러코스터의 목소리가 놀림처럼 들리는 것은 오로지 자격지심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애초부터 글러먹었기 때문이라며 우격다짐하고 있다.





#2


시간은 흐르고 섬도 매년 모습이 변한다. 한 때 찰랑이는 단발을 휘날리며 눈가를 찌르는 머리칼이 성가셔 "이까짓 머리카락, 확 잘라 버릴까" 고민하던 한 청년이, 그러나 사실은 그닥 멋잇게 보이지도 않지만 나름의 가오를 유지하기 위해 끝끝내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지만, 어느세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버려 빼곡히 덮여있던 머리카락이 수줍은 살색을 드러내며 훤해지듯, 섬도 매년 억새의 자리를 잃고 앙상한 대지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현상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행위이다.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출현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며, 어쩌면 집단을 이루고 농사지를 짓던 것보다 더 오래된 일이라는 근거도 얼핏 눈에 띈다. 대체로 신의 행위라 여겨졌던 자연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늠하곤 하던 닝겐의 모습은, 알파고 성님이 곧 세계를 지배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이 때, 한쪽으로는 알파고에 충성충성 댓글을 쓰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역시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고 있다. 어쩌면, 한 3백년 쯤 지난 뒤 지금의 이 시기를 인공지능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지칭할 지도 모른다.

만약 섬의 변화를 통해 나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풍부했던 감성과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듯한 넉넉한 품을 가진 한 소년이 현대 사회의 쓰라림과 이별의 상처 끝에 점차 헐벗은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나 할 수 있고, 또다른 해석으로는 곧 탈모인의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르겠다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애타게 유전자를 추적한 결과로는 탈모인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술에 취한 가족분들 중 한 분이 선조 중에 대머리, 그것도 대머리 동아리가 있다면 회장을 넘어 고문급의 명성을 지닐 수 있을 만큼의 대머리였다는 기절초풍할 사실을 살짝 흘린 것도 같으나, 기분탓이라 흘러넘겼기에 그 사소한 말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좌우지간, 모든 것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말씀 되시겠다. 아, 딱 하나, 눈치없이 늘어나는 몹쓸 뱃살 빼고.




#3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단다. 사람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초등학교 시절 칠판에 학습주제를 적어놓다가 갑자기 일장연설을 하시던 어떤 쌤의 말씀에서 배웠듯, 나는 내 주제를 잘 아는 사람이므로 시인은 커녕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기에도 마음 한 켠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난데없지만 면목동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을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면목없음과, 맹자가 다시 태어나 인간의 모든 감정은 사실 수오지심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의 사상을 재편할 만큼의 부끄러움이 있다. 하지만 윤동주도 맹자도 면목동 사람들도 다 닝겐이듯, 나 역시 잎새 대신 억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괴로운 나머지 괴력몬이 되어 이 드넓은 억새밭을 다 갈아 엎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녀를 괴롭혔던 죄, 여기에서 받는 것인가.


메말라 가는 것 중에서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헐레벌떡 스스로 다 벗어제끼며 도망가는 것들 중에 선두를 이루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두번째가 글솜씨이다. 항의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글솜씨는 단 한번도 공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만약 글솜씨를 자격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낙방에 낙방을 거듭해 한 60년 쯤 지나면 '최고령 응시자'로 신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게임이나 즐길 줄 아는 친구들중에서 좀 쓰는 편에 속했던, 그러나 백일장만 나가면 번번히 지도 선생의 '염세적이다.', '우울하다.'는 평을 받고 억지로 수정,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곤 주최측에게서 표절 의심을 받곤 하던 글솜씨로는 아무래도 세상에 이름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꼭 세상에 이름을 낼 만한 솜씨를 지닌 사람만 글을 쓰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니체와 모짜르트는 인류가 절멸할 때까지도 이름을 남길 만한 업적을 쌓았다지만, 그 둘에 미치지 못한 2인자들의 작품 따위 아무래도 알 게 뭐냐라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2인자의 자리까지도 미치지 못하지만, 모든 인생엔 나름의 지옥이 있는 법이며 그래서 또 아름답기도 한 법이다. 

아아, 완연한 아름다움을 피우고 싶어라! 묵직한 침묵 속에서 강려크한 절규를 내뱉으니, 저 비루한 억새들, 날 두고 이래라 저래라 가르칠 때는 언제고 죄다 쫄아서 몸을 뉘인다. 하늘거리며 풀썩 눕는 꼴이 꼭 격렬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하는 고양이, 혹은 그런 내 모습 같다. 하늘거리며 아무 것도 하기 싫지만, 그러나 하늘거릴 수 밖에 없는 세파에 어리둥절,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것 마저 꼭 닮았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내가 멍청할 때엔 현명하고, 내가 현명해지는 척 할 때엔 멍청해지는 것이더냐. 스핑크스 앞에서도 툭툭 묘답을 내뱉을 것만 같던 지난 날의 녀석들은 자식 농사를 망쳤는지, 아무런 답이 없다.

답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답이 없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다 맞는 답을 내어 답답해지는 것도, 뭐든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괘씸한 녀석들이로고.





#4


사건은 항상 생활의 불편을 불러온다. 편안한 생활이란 건 무사안일한 일과를 전제로 놓고 있기에, 사건이 성격이 즐거움이든 우울함이든 간에 편안한 생활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아주 높은 비율로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썩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나, 어찌하여 닝겐은 이 모양 이 꼴로 진화 되어온 것인지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이브 유골을 마주해 욕을 퍼붓고 싶다. 도대체, 뭐 때문에, 어찌하여, 닝겐은 기쁨에는 그다지도 빠르게 시무룩해지거늘, 우울함의 총량은 감정의 골짜기에 쌓이고 쌓여 도저히 손도 못 댈 지경에 이르러서도, 당최 익숙해지지도 무감각해지지도 식지도 않는 것일쏘냐! 이브 할머니께선 길 가다 뺨 맞은 것처럼 어처구니 없어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할머니 대로 나름의 조상님들에게 항의하시면 될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자고로 남 탓이 제일이다.

고로, 내가 요즘에 조악하고, 한심하고, 엉망이며, 낙서같고, 비루하며, 고루하고, 졸렬하고, 낙서 수준의 글들만 써 제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 탓이라는 훌륭한 결론에 도달했다. 억새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검을 꺼낸다. 으음, 만사가 편안해졌다. 삼라만상에 피어나는 찰나의 감정들이란 모조리 호로몬의 작용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해버리면, 혹은, 우주구급, 혹은 육도윤회와 일만 번 전의 전생 을 들고 나오면 이 생에 피어나는 괴로움 따위 모조리 한 조각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그 드넓은 국부 은하군조차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한 조각 줄기에 지나지 않으며,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은 아예 관측가능한 영역을 홀라당 벗어나 버리지 않던가.

그렇게 시야를 무제한으로 넓혀보지만, 불변하는 사실이 단 하나 있다. 나는 바늘로 살짝 찔러도 일본도를 맞은 조선의 갑사처럼 비통한 마음을 못 이겨 떼굴떼굴 그르는 강직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런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로 인해,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상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어느 중력에 메여야 할 지 알지 못한 채,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언제 또다시 태양을 찾아 뵐 수 있을런지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는, 기약없이 떠나다가 어느 단단한 행성에 부딪히거나, 혹은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태양풍에게 빼앗겨 소멸할지 모르는 혜성처럼 되버린 삶이여, 아아, 훌륭하다. 마땅한 단골집을 잃어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요즈음의 나이므로,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에 다소간의 에로도 겪지 못하고 애로를 겪는 것을 감싸주어야 한다. 답을 내지 못한다 하여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다. 

양심이 있는 존재라면 피어오르는 한심함 따위, 만인에 대해 투쟁하듯 뿌리채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5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채 뽑는다 하여도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안다. 달라지지 않았기에 머무르고만 있단 것도 안다. 놓친 까닭엔 다 이유가 있다. 걷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해 머무르지 있는 것도 안다. 안다. 다 안다. 알기만 하고 모르기만 하니 매년 이곳에 되돌아 온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들이라곤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것을 해내버리는 책 속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것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필부와 영웅을 가르는 것은 한 끗 차이지만, 각자의 앎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나 아는 것만으로는 답을 낼 수도, 구할 자격도 없었다. 녀석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도 알았다. 알았으나, 나는 항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치에, 논리에 모두 맞는 것이라고 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컨슈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인을 비판할 처지가 되지 못함을 선택했다.

올해의 섬은, 그 낯빛이 유난히 흙색이었다. 다시금 꿈을 묻다가, 꿈을 묻었다. 


돌아오는 길은 평온한 일상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마음이었다. 허전한 곳은 다시금 떡볶이로 채워야 겠다. 당장은 찾지 못한 단골이 될 집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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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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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나의 섣부른 기쁨은 곧 고난의 행군을 불러왔다. 옥수수와 조만으로 1주일을 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수도 있으나, 가진 능력의 배를 요구하는 혁명 과업의 완수는 소크라테스의 이름빨을 받은 덕에 널리 알려진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의 참 뜻이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이고 심도있는 고찰을 할 수 있었다. 불세출의 명곡인 만큼 <여름날>의 주법을 알려주는 기타 강의는 많았으나, 유감스럽게도 미묘하고 섬세하며 가련한 감성을 불세출이 아닌 손 끝 탓에 더이상 따라갈 수 없었던 것이다. 손 끝의 태업에 적잖이 당황했으나, 그보다 문제는 한없이 문디스러워지는 뇌에 있었다. <여름날>이란 제목을 떠오를때마다 '애시당초는 여름장이란 글러버려서...'로 시작되는 명소설의 문장이 떠올라, <여름날>도 여름장도 나의 여름도 모조리 글러버린 것은 아닌가 싶은 강한 사념이 뉴런들을 휩쓸고 다니며 각개격파, 오늘도 누군가의 뇌세포는 노벨 물리학상에 한걸음 다가서는 연구를 위해, 혹은 인류의 지적 자산에 당당히 그 이름을 올릴 중대한 철학적 고찰을 위해 그 값어치를 톡톡히 해내고 장렬히 전사하고 있지만, 주인을 잘못만난 나의 뇌세포는 안타깝게도 물 건너온 예술 영상과 출연하는 아리따운 배우들의 이름을 고이 간직하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자니, 어쩌면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는 여름의 난동에 뇌가 익어버린 것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어쨌든, 사태수습의 책임은 나에게 달려있으므로 나태한 손 끝과 혼란한 뇌 속에 통제명령을 내렸지만, 도저히 협상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들의 연대투쟁에 백기투항을 선언하기 직전까지 몰려있었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있어 평소 나의 아름다운 인생에는 1그램도 협조하지 않던 봉투 녀석의 기여가 일정부분, 으흠, 쿼크의 무게만큼은 기여했다는 것은 썩 기분 좋지는 않지만 나는 도덕적인 사람이므로 조금이나마 인정하는 바이다.

"거, 안 되는거 어거지로 하려고 들지 말고 야매로 해라 야매로"

"무사수행의 길에 포기란 없느니"

"포기는 둘째치고, 약속의 그날이 다가오는데 반절도 못치면 개망신 아니겠냐?"

"이 부분만 넘기면 웬만큼 할 수 있다!"

"4일 내내 인트로만 붙잡고 삑사리나는 걸 어쩔 수 없이 들어야 하는 내 신세도 좀 고려하는 게 어때"

"싫으면 나가시든가."

"동거인의 계약이라곤 쥐뿔만큼도 고려하지 않은 놈이로고."

"애시당초 네 놈의 무단침입으로 시작된 것이거늘"

"그건 됐고, 아무튼 그 인트로, 어차피 코드 변주 안 되잖아?"

"할 수 있.."

"아니 할 수는 있는데, 지금은 안 되잖아?"

잠시간 나는 떨리는 손 끝을 바라보았다. 손 끝에 얼굴이 달려있다면, 기타줄에 눌려 얼굴에 기스가 잔뜩 간채로 눈물을 흘리며 내게 "제발 죽여줘..."라는 호소를 하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들 수 밖에 없었다.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가지 불가항적인 환경 때문에 기한까지 과업 완수의 가능성이 다소 불투명할 수도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아휴, 아무튼, 어쨌든, 그러니까 좀 머리를 쓰라고"

"흐음, 계책을 짜내보거라."

"안 되는 인트로 어거지로 맞추지말고, 그냥 코드로 쑥 쳐버려"

"아니 그래도 가오가 있거늘"

"가오같은 소리하네. 백날 인트로 붙잡고 있다가 본전도 못 건질 뽄새구만."

"흐음"

그런 연유로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야매'로 이 곡을 때우기 시작했다. 무사수행에도 때때론 실용주의적인 태도가 필요한 것이라는 훌륭한 결론을 낸 채로. 


"안녕하세요."

나긋하게 허리를 숙이며 내게 인사하는 그녀. 그녀의 앞머리가 생긋한 이마를 감추고 합쳐졌다가, 다시 홍해처럼 갈라지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아, 네. 안녕하세요."

그에 반해 나의 앞머리는 강풍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흩뿌려졌다가, 본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게 헝클어져 괴상한 몰골이 되어 버렸다. 나는 머리에 손을 가져갔다.

"이번엔 갑자기 다른 곡을 부탁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녀의 농담에 머리를 만지던 손 끝이 갑자기 저리기 시작했다. 앞머리는 당최 돌아올 기세가 없었다. 손 끝의 태업은 다시 시작인가.

"나름, 어, 연습을 좀 하긴 했는데, 굉장히 어려워서 어설퍼요."

"어려운 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부탁드린거니까요."

"그래도 기대는 안 하시는게"

"그런 말은 좀 늦은 것 같은데요."

알싸한 개망신의 기운이 카페 안을 잔뜩 메웠다. 대대적으로 망할 느낌이 손 끝에 잔뜩 몰렸다. 초나라 노래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던 때 항우의 심정이 바로 이런 것일까.

"그럼, 어쨌든, 해볼게요."

만취한 친구녀석마냥 비오는 날이면 쿡쿡 쑤시는 허리위에 널부러진듯 얹어져 있던 기타를 꺼냈다. 영 시원치 않은, 골골대는 소리를 내며 기타 녀석이 잠에서 깨어났다. 기타야, 이번만큼은 좀 힘내주면 안되겠니. 이제 잘 관리해줄게. 나는 녀석에게 간절한 속마음을 건네며, 조심스레 기타에 스트로크를 던졌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는

파란 미소의 너의 얼굴 손 흔들며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내게 달려오고 있어.

그토록 내가 좋아했던

상냥한 너의 목소리 내 귓가에서

안녕 잘지냈니 인사하며

여전히 나를 지켜주고 있어.


"짝, 짝, 짝"

그녀는 여백을 삽입한 박수를 세번 치고 말했다.

"XX씨는 노래를 잘 하시네요"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나는 그 말을 듣자 뒷머리가 간지럽기 시작했다. 이것은 마치 누군가 칭찬을 할 때 의례적으로 뒷머리를 긁으며 "아니에요~ 그정도는~"하는 말을 하곤, 속으로 '역시 해냈구나'하는 만족이 차오르는 것을 기쁘게 즐겨야 할 때임을 알리는 신호다. 나는 조심스레 손을 뒷머리로 올렸다.

그런데 그녀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타에 비하면 훨씬요."

간지러웠던 뒷머리에 누군가 함마로 후려친 듯한 충격이 들었다. 의식을 깨우친 봉투에게 이제 드디어 손 발이 달린걸까. 사실이라면 태초에 의식이 먼저 발현되었고 뒤이어 진화가 따랐다는 학설을 발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돌아봐도 머리 뒤에는 허공 뿐, 머리를 후려친 것은 물체가 아니라 목소리라는 것은 고개를 다시 되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야 깨달았다.

"역시 야매가 맞네요. 순전히 노래하실려고 배운거지요?"

내 단 한번도 야매기타가 아님을 부정한 적이, 아니, 기타친다는 것을 알릴때에는 꼭 야매 기타라는 말을 덧붙여 불필요한 오해나 기대를 줄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으나, 그것을 타인의 입에서 듣는 것은 그다지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서슴치않았다.

"코드변주할 때 운지법, 하이코드 운지법, 스트로크, 아르페지오 주법. 모두 엉망이에요."

"네, 네, 맞, 맞습니다. 그렇지요."

"리듬도 중간에 늘어지고, 삑사리도 네 번이나 났어요."

"네 번이나? 아니 그와중에 그걸 세고 계셨..."

"무엇보다, 인트로를 그렇게 하는 건 반칙이에요 반칙. 이 노래에 인트로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시죠?"

"...면목없습니다."

뒷머리를 긁적이려 했던 내 손은 어느새 곱게 뒤로 모아, 컴플레인을 제기하는 고객님을 응대할때처럼, 그보다 전에 방학숙제를 검사하는 담임선생님께 혼날때처럼, 그보다 전에 방 청소를 안 해놓고 띵가띵가 놀다가 아버지께 털릴때처럼, 양쪽 손에서 샘솟는 땀을 옷에 닦아대고 있었다. 고개는 점차 수그러져 어느새 신발 앞꿈치에 묻은, 이전에는 안보였던 얼룩들이 생생히 보이기 시작했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을 증명하듯 낯뜨꺼움에 뇌가 뜨겁게 익는 듯 했다. 아아, 망했구나. 망했구나.

"그래도 노래 부른 게 좋아서, 꽤 괜찮았지만,"

라는 말도 한 것 같은데 익은 뇌 때문에 고막도 전골이 됐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러면, 제 차례인가요?"

"아, 네, 네. 그렇죠."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녀도 곡을 연습해오기로 했던 것이다. 웬만해서는 타인의 결점을 굳이 찾아보려 하지 않는 관대하고도 너그러운 성품을 지녔지만, 뜨겁게 익은 뇌는 평소대로의 자제력을 지니지 못하고 평론가 모드로 접속해버렸다. 그녀가 혹평을 쏟은 까닭의 근본 원인은 대책없이 야매인, 허접하디 허접한 나의 기타 솜씨 때문이지만, 나의 결점을 뒤돌아보기 전에 일단 화부터 내는 어느 연예인의 전략을 써야할 때가 비로소 지금이라는 옳지 못한 결론이 샘솟았다. 폭주하는 뇌여, 제발 멈춰다오. 그것만은 아니되오.

"그러면, <옛사랑>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아, 네. 부탁드립니다."


이제 그리운 것은 

그리운대로

내 맘에 둘거야.

그대 생각이 나면

생각난대로

내버려 두듯이.


일찍이 이데아론을 꺼내들으며 보편 절대적 상태에 대한 스스로의 확신과 동시에 독자에게는 불확실함을 선사했던 플라톤은 "음악과 리듬은 영혼의 비밀 장소로 파고든다."는 말을 했었다. 플라톤의 경우에는 아마도 그 마음속에 있을 동굴에 파고 들었었겠지. 영국의 왕정복고기 이름난 극작가였던 윌리엄 콩그리브는 "음악은 야만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는 희한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유래없이 많은 식민지를 건설하며 야만인들을 교화해왔던 영국인들의 눈에도 음악의 능력은 대단해 보였나보다.한편, "신은 죽었다"면서 후대에 수없이 많은 중2병들을 양산한 니체는 "간단히 말해서,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이며, 유배당한 삶이기도 하다."고 말했고, 또 젊은 남자와 유부녀의 불륜을 사무치게 그린 <젊은 베르터의 고뇌>를 쓴 괴테는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이라고 말할 자격도 없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때서야 비로소 반쪽 인간이 된다. 그러나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며 글 쓰는 이 특유의 긴 혓바닥을 자랑하기도 했다. 아무튼 '옳은 인간'이 되기 위해 고민했던 독일의 전통이 베어나온 음악찬사라 할 수 있겠지 뭐. 또 누군지도 몰랐던, 지금도 잘 모르는 칼릴 지브란이란 사람은 "노래의 비밀은 노래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지닌 진동과 듣는 사람의 마음의 떨림 사이에서 발견된다."는 말을 했다. 아직 여기에 적어낼, 음악에 대한 찬사를 붙인 명사들의 수많은 말들이 남아있으나, 그녀의 노래를 듣던 나의 상태를 표현할 만할 꽤 쓸만한 글이 이미 이것들 중 하나로 표현됐으니 이만 쓰도록 하겠다.

고백하건대, 사실 그녀의 입과 손에서 멜로디가 울려 퍼질 때의 나는, 부루마블을 하다가 잠시 정신을 놓은 그 때처럼 어딘가로 유영을 떠나온 듯 해서, 나중에 인터넷을 뒤져 명언으로 대체했음을 밝히는 바이다. 저 양반들이 했던 말 따위 내가 평소에 알게 뭐냐. 

아무튼 그런 관계로, 불을 키고 스스로 익어가며 결점을 찾으려했던 나의 뇌는, 그 열기를 온전히 가슴에게 내준 채 차갑게 식어있었다. 눈과 귀가 그녀에게 인식을 뺏긴 채 넋을 잃었고,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이려는 볼썽사나운 주둥이에게 몇번이나 되새김질을 시킨 뒤에야 감상이라고 말하기에 조악한 평을 내놓을 수 있었다.

"참, 훌륭하시네요."

"그래요? 흐음, 저는 별론데 말이죠."

"틀린 것도 없고, 너무 잘하시는데요?"

"글쎄요. 아직 썩 성에 차지가 않네요."

그녀의 고집스러운 불만족과 합의하는 것은 미뤄두기로 했다. 어쨌든 그녀가 나보다 훨씬 훌륭한 연주자라는 것을 안 이상, 감놔라 배놔라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비평을 달 자격이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그 기타실력이 빛이 바랠 정도로 훌륭한 음색의 소유자라는 것을 안 이상, 귀를 씻지 않는 것으로 목소리를 다시 재생할 수 있는 조건이라면 한 50년 쯤 귀는 커녕 귓볼 언저리 조차도 물이 닿지 않게끔 아예 싸매고 돌아다닐 수 있을 정도의 호강한 경험을 했기에, 가타부타 말을 꺼냄으로써 걸쭉한 내 음성이 내 귀로 흘러들어오는 자해행위를 할 맘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영영 아무말도 안 할 수가 없는 법, 나는 말을 꺼냈다.

"감사히 잘 들었습니다."

그녀가 답했다.

"아, 저도."

왠지 거기서 말을 끝내기엔 다소간, 피차간, 상호간, 뭔가 끈적지근함이 있어, 창피해 죽으려고 하던 뇌는 벌써 방관자 모드가 된 채 나는 이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다음엔 또 어떤 곡을 연습해올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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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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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돈을 벌어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하물며 노숙자일지라도 거리에 떨어진 동전 몇 개를 주우는 노동이 필요하다. 노동이야 말로 삶을 영위해가는 근본 요소임이 확실하다. 노동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그러나 작금의 나는 노동자가 지녀야 하는 최소한의 태도, 즉, 월급 통장에 찍히는 액수에 대한 더없이 소극적인 주관적 평가를 바탕으로, 국가가 보장한 실업급여 대상자의 자격을 지니지 않기 위해 최대한의 몸부림을 최경량으로 부리는 중이었다. 봉투 녀석은 태업 운운했지만, 확실하게 태업은 아니었다. 다만 태업과 근로 그 사이 어딘가의 지점에서 자신만의 외로운 싸움을 계속했을 따름이다. 철저히 그것을 위장했다고 여겼지만 몇 번정도 탄로날 뻔 했던 위기 - 단골 손님에게 어디 아파보인다는 얘기를 듣거나 - 를 몽실몽실 자연스럽게 극복하면서까지 그래야만 했던 이유는, 칼퇴 후에 이어진 '기타수행 폐관수련'에 있다. 노동이 우리를 자유케 하리라, 나는 그 명제를 믿는다. 폐관수련도 일종의 노동인 만큼, 완전한 자유까진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보상이 있을 것이라 믿으며. 아니, 냉혹한 자본주의의 섭리에 견주어도 그것은 마땅히 그정도는 받을만하다. 그 보상이 무엇인지는, 에헴,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그리고 드디어 동호회 모임 날이 도래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세탁을 잘못하지도 않았건만 흰 샤쓰가 노란 샤쓰로 변하는 마법이 펼쳐질 시간, 나는 결전에 임하는 무사의 자세로 칼을 차듯 기타를 멨다. 오늘따라 유난히 거울이 예뻐보여 깊은 관찰의 시간을 갖자, 봉투 녀석이 여지없이 초를 쳤다.

"죄없는 거울 그만 고문하고 어여 가라."

"자식아. 잘 좀 들여다 봐라. 승리의 깃발을 휘두르는 장군의 풍모가 보이지 않더냐."

"오, 그렇구만. 보이네 보여."

녀석은 거울을 뚫어지게(봉투가 다소 앞으로 기울여서 휴지가 하나 튀어나왔다.) 쳐다보더니 말을 덧붙였다.

"머리는 산발되고 갑옷은 다 떨어진 채 피투성이로 패전의 소식을 전하는 패잔병이 보이는구만."

"어허, 또 초를 치는군."

"네 놈의 패전이 곧 나의 승리로 이어지는 것을 어쩐다냐"

"애초에 동호회를 시작하라고 한 놈은 너라고"

"그게 꼭 너 잘 되라고 한 얘기라는 보장이 있냐."

어라? 어쩐지 뒤통수에 급격한 빙하기가 찾아와 생의 끝자락에서 공룡이 내뱉는 최후의 숨결같은 한기가 불어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일주일간의 폐관수련은 어지러이 나의 길을 방해하는 그릇된 자들을 단호히 처단할 수 있는 지조를 주었으니, 이번만큼은 녀석의 함정에 빠지기엔 마음이 난공불락의 성채 같았다.

"자, 이제 네 놈의 장단을 맞춰줄 시간이 끝났다. 나는 가노라."

끝까지 비웃음으로 일관하는 녀석에게 나는 문을 열며 덧붙였다.

"이따 두고 보시게. 나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를 듣게 될 것이니"

육중한 철문이 닫혔다. 닫히는 문틈 사이로 모든 것을 노랗게 만드는 마법의 빛이 어둠속으로 끌려들어갔다.


그녀는 소담소담한 치마를 입고 구석자리에 있었다. 북적이는 카페 안에서 사람들은 북적이는 만큼이나 나름대로의 즐거움을 한껏 연출하고 있었다. 저 무더기 안에서 쏟아지는 말 한마디마다 어리석은 중생들의 일진일퇴가 반복되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니, 출입문을 들어서는 나의 발걸음은 흡사 해골물을 만나기 전의 원효의 발걸음에 비할 법 했다. 아아, 세상이 아름답다고 믿는 철부지들은 도대체 어떻게 구제해야 하는가.

그런 와중에도 독야청청, 사방 1m 밖에 AT필드를 친 채 아우라만으로 어리석은 중생 중에서도 아귀도에 떨어질 법한 중생들의 침공을 오늘도 무사 격퇴해내는 수성의 대가, 그녀가 있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퇴각하는 어리석은 중생들을 한 명으로 합쳐놓는다면, 아마 그의 뒷머리는 부분탈모가 생기리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태도이다. 마땅히 그녀의 기세가 영원까지 이어지기를 잠시 기도했으나, 뭐라 말 할 수 없는 흉측스러운 마음이 기도장을 깽판쳐놨다. 몹쓸 녀석들이 현실의 방에도, 마음의 방에도 너무나 많다. 흉측한 마음의 깽판은 어느새 두 다리를 조종해 무량한 만용을 부리며 모든 어리석음을 튕겨내는 AT필드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AT필드를 딱 걸쳐있는 상태로 흉측한 마음이 말을 걸었다. 

"아, 네"

"저번에..."

"그,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쳐주시기로 했죠?"

흉측한 마음이 킬킬 거리고는 속삭였다. '거봐, 팔로미라고 ?'

"네, 네. 그래서 연습을 좀 해와..."

"엄청 고민해봤는데, 그 노래보다 더 좋아하는 노래가 떠올랐어요."

"아, 네."

흉측한 마음의 아가리가 상암월드컵경기장처럼 주우우우우우우우우욱 넓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네?"

"좋아하긴 하는데, 완전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다른 노래를 생각해왔어요."

"어떤....어떤 노래인가요?"

"유희열의 '여름날'이에요."

"아!"

"아세요?"

"저도 제법 맘에 품고 있습니다만"

"그럼, 그걸로 부탁드릴게요"

"예?"

"안 돼요?"

'안 돼요?'라는 그녀의 물음이 마음의 방 안으로 도달하자, 흉측한 마음이 침을 질질 흘리면서 공허한 마음의 동굴을 타액으로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그 노래가 훌륭하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으나, 문제는 나의 비루한 기타 실력이 그 노래를 연주하기에 썩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그녀의 말이 고막을 때리자, 순간 내 몸의 모든 땀샘이 햇빛 좋은 날 빨래를 널기 위해 활짝 열어제낀 창문처럼 무제한적인 개방정책을 실시했고, 덕분에 잠들어있던 땀들이 삐질대며 자유로운 해방전선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답을 찾아야만 했다.

"그게...그게 말이지요."

"왜요?"

'왜요?'라고 되묻는 그녀의 눈망울이 겨울날의 시리우스처럼 빛났다. 

"그 뭐시기...그 노래는 한번도 연습해보질 않아서요."

"그런가"

빛나던 시리우스가 순식간에 백색왜성으로 변했다. 수십억년의 시간을 넘나드는 그녀의 눈방울은 참으로 신묘하기 그지없다.

그녀가 입술을 빼쭉 내밀더니 아랫입술로 윗입술을 왼쪽으로 물고, 다음엔 오른쪽으로 물었다. 나 역시 어린 날, 동네 아이들 중에 가장 똑똑하다며 어르신들의 만장일치 판정을 받은 그 시절(동네에 아이들이라고는 동생과 나 밖에 없었다는 점은 간과해도 좋다.)의 얼굴에는 미약하게나마 지금 그녀의 얼굴과 비스무리한 무언가가 남아있긴 했다. 입술을 좌우로 삐쭉거리는 것은 과자가 먹고 싶다며 툴툴대던 말과 동시에 시행하는 일종의 안면근육 시위였는데, 유감스럽게도 엄한 부친께서는 시위에 몽둥이로 응징, 강력 진압 해버리셨다. 하지만 그 엄한 부친께서도 지금의 그녀와 마주하신다면, 몽둥이를 집어던지고 함께 시위대열에 합류하실 것이 분명하다.

말없이 관찰하던 내가 이상해진건지, 아니면 용건이 끝난것인지, 그녀는 천천히 몸을 돌리고 있었다. 공기가 회전문처럼 그녀를 감싸고 돌았다. 어쩐지 이 회전문은 그녀를 태우고 돌면 작동이 영영 멈춰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 일종의 확신에 가까웠다. 흉측한 마음이 락페스티벌이라도 온 것 마냥 미친놈처럼 뛰댕기며 부실공사를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마음의 방을 곧 무너뜨릴 것 같았으니까.

"다, 다음 주까지!"

나는 애타게 외쳤다. 그녀가 천천히 돌아보자, 백색왜생으로 변했던 그녀의 눈망울엔 어느새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어 궁금해하는 성운의 어둠이 깔려있었다.

"다음주모임에어떠세요?그때까지연습해보지요."

"음"

음절을 반 이상 갉아먹으며 숨을 토하듯 부리나케 뱉은 나의 대답에 그녀는 잠시 골똘한 표정을 지었다. 성운의 구름은 점점 퍼졌고, 시간이 꽤나 흐른 것 같은데 여전히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녀에게 '이상한 놈'이라 여겨지는 걸까. 아니, 그것만은 아니되오!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못 한다고 하고 다른 말이나 좀 붙일 것을. 아아, 어찌하면 좋으리오.

자책이 무럭무럭 자가번식하기 시작할 무렵,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한 마디를 던져놓은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번 주에 들려주시기로 한 것은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싱그러운 단발이 찰랑이며 쏟아지면서 고개를 숙였다. 

나는 당황했다.

"아니, 아니 그러실 것 까지는"

"아니요. '좋은' 노래를 내내 생각하다보니 기왕이면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싶어서 저도 다른 생각을."

"그렇다고 사과하실 것 까지는 없, 없습니다만"

"다음 주에 <여름날> 연주해주시기로 했으니, 그러면 저도 나름 답례를 드리고 싶은데요."

"예?"

"좋아하시는 음악을 알려주세요. 저도 연습을 좀 해볼게요."

평소 같았으면 퇴계 이황의 문하로 들어가도 예의범절이 몸에 익은 것으로는 문하생 중 으뜸이라 평가받고 걸어다니는 예기 그 자체라 불릴만한 선비의 자세를 지녔기에 한껏 겸양있는 사양을 부려야 하겠지만, 그 때의 나는 갓끈 따위 어디다 갖다 버렸는지, 냉큼 대답을 해버렸다.

"이문세의 <옛사랑>이요!"

"아아, 그 노래요."

하지만 미처 간과하던 사실이 부메랑처럼 뒤통수에 강한 지진을 일으켰다. 과연 그녀가 이 노래를 연주할 수 있을 것인가. 다짜고짜 뱉어놓기만한 자신이 한심했다.

"뭐, 그러지요."

그녀는 웃은건지 무표정인건지 알 수 없는 표정을 보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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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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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내가 한 것은, 흑암지옥을 방불케 하는 집 구석의 오른쪽 모퉁이를 향해 수색정찰에 돌입하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좁은 방에 괴상하고 파렴치한 봉투 쪼가리가 떡하니 공간을 차지, 어느 시점부터 내가 월세를 내고 있는 공간이라 여기지 않게 된 공간이었다. '나의 공간으로 인식하지 않기에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지극히 이치에 입각한 논리는, 먼지와 괴물처럼 쓰레기를 내뿜고 있는 고약한 봉투들이 다소간 어지러울 뿐인 공간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기 위한 소방대원의 사투가 펼쳐지는 대지진 현장으로 진화해버렸다. 

물론 내가 이 상황을 타개하려는 노력을 안 한 것이 아니다. 다만 논리적, 상식적으로 이미 내가 책임져야 할 공간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적극적인 개입을 할 수 없었을 따름이다. 게다가, 통 큰 양보를 통해 봉투 녀석에게 공간을 내주었으니, 방을 절반으로 나누어 빗금을 치고 공간 안에 있는 쓰레기와 먼지들에 대해 상호 간 무한 책임을 지자는 나의 선량한 제안에 녀석은

"평화 지대 구축에 장애만을 덧쌓는 잠꼬대 같은 궤변으로, 우리 공화국의 인민은 모두 똘똘 뭉쳐 이런 오만하고 간사한 제안의 저의를 꿰뚫어보고 더욱 '우리 먼지끼리'를 외치며 혁명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라는 해괴한 논평으로 거절, 그 순간만큼은 쓰레기를 품은 녀석이 김정은의 배를 연상케 할만큼 불량하기 짝이 없었다. 그 제안이 수포로 돌아간 이후 이 지역은 그야말로 유사이래 인류의 손이 닿지 않은 미탐사 지역처럼 고이 먼지가 쌓이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곳을 굳이 나의 폐를 걸고 탐사하는 까닭은, 장판에 쌓인 먼지 두께만큼 똑같이 먼지에 눌려있는 기타를 구해내기 위해서였다.

"너는 앞으로 물건을 사지 않는게, 아니 그냥 입산출가해서 무소유의 삶을 사는 게 어떠냐?"

"무슨 뜻이여"

"네 놈이 소유하는 물건들의 운명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말이다."

"네가 신경쓸 바가 아니다!"

"이대로 놔두면, 곧 나같이 득도할 녀석들이 이 방에 가득가득 할지도 모르겠군."

"뭐시라?"

매사의 사려깊은 나조차도 깨닫지 못했던 중요한 포인트를 녀석이 짚었을 때, 심장이 씽크홀이라도 생긴 것처럼 철렁했다. 아뿔싸, 통렬한 아뿔싸였다. 저 괴이쩍인 봉투 놈 한 명으로도 족한데, 봉투 같은 녀석이 떼로 떠들어 대면 정말로 입산출가하는 것이 더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조만간 청소를 하긴 해야겠다 싶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있으니.


오랜만에 꺼낸 기타는 주인을 책망하듯 애닳픈 소리를 내었다. 줄이 다 풀린 채 '딩딩'대는 녀석을 보니, 불현듯 울화가 치밀었다.

"이 녀석도 저 녀석도 죄다 괘씸한 녀석들 뿐이로고."

봉투가 물었다. "또 무슨 궤변을 늘어놓으려고"

"생각해 봐라. 이 녀석, 지가 무슨 일주일간 음식 섭취를 못한 조난자처럼 아사 직전의 소리를 내고 있지 않냐. 우리 부친께서 내게 그러하셨듯, 가풍에 따라 강하게 키웠는데 그 결과가 이따위라니. 이 녀석의 나약함에 울화가 치민다. 울화가 치밀어."

"그 울화를 잘 새겨둬라."

"왜?"

"춘부장께서도 네 녀석의 꼬락서니를 보실 때마다 울화가 치미실테니."

항우가 살아 돌아와 용을 쓴다 하여도 한 치도 움직이지 않을, 태산보다 더 부동부혼의 사나이 자긍심에 한 줄기 새빨간 스크래치가 갔다. '조만간' 있을 대청소 때 그냥 모조리 버릴까도 싶다.


기타줄을 새 것으로 갈아끼고 먼지를 싹 청소하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작일의 나였다면 이미 지쳐서 깨끗해진 기타를 다시금 유배보냈을테지만, 당면한 목표가 시급했으므로 그리할 수는 없었다.

"웬일이냐? 도로 안 집어넣고"

"이 몸은 목표가 생기면 경부 고속도로를 시속 200km로 달리는 사내이기 때문이지"

"기타 동호회에서 또 부질없는 연심을 품을 여성이라도 만난 것이겠구만. 뻔하다 뻔해. 너무 뻔해서 신작영화의 스포일러를 당한 느낌이야"

"연심이라니, 무엄하도다. 기왕 동호회 활동을 하게 된 것, 구성원으로써 좀 더 적극적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함에 지나지 않으니, 나의 순수하고 선량한 의도를 곡해하지 말도록"

"기왕 스포일러 당했으니 나도 스포일러로 갚아줘야겠다. 너, 그 연심의 결말을 내가 알려주.."

"조용! 조용! 지금 누가 소리를 내었는가! 나는 지금 무사수행의 삼매에 빠져야 하니 조용히 해주길 정중히 요청한다."

내가 녀석의 말을 끊는 일은 좀처럼 없는 일이나, 녀석은 화를 내기는 커녕 씨익 웃으며

"그럼 어디 한번 열심히 연습해보셔."

라는 말과 함께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녀석의 불량한 의도와는 달리 나의 연습은 순조로웠다. 코드도 찾고 운지법도 열심히 체크하며 한 소절 한 소절 열심히 반복했다. 문제는 한 소절 뿐이었다는 점에 지나지 않으니 이 기세라면 이 달안에는 마스터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녀에게 이 곡을 연주해주겠다는 호언장담을 하긴 했지만 딱히 언제라고 시기를 언급한 것은 아니니, 꼭 다음주에 있을 모임까지 마스터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테클걸지 마라"

"당치않는 소리. 나는 여기서 그저 미소를 띄운 채 네 녀석의 연주를 관람하고 있을 뿐이라고?"

"속으로 비웃고 있는 거 다 안다. 그리고 연주를 관람이라니, 문법부터 익히고 오도록"

"하라는 곡 연습은 안 하고 왜 관심법부터 마스터했냐. 그리고, 연주라고 하기엔 너무 조악해서 볼 꺼라고는 낑낑대는 네 꼬라지 밖에 없어서 관람이라 한 것일 뿐"

역시나 순조로웠던 연습은 녀석의 훼방으로 인해 차질을 빚기 시작했다. 부아가 치밀어 올라 두개골을 열고 승천할 것 같았지만, 잠시간의 화를 억누르고 다음 소절로 진입했다.

"오호"

"왜 또!"

"거기까지 하고 관둘 줄 알았더니만, 다음 소절로 넘어가긴 하네?"

"이미 말했듯, 나는 목표가 생기면 시속 200km로 경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사나이라고"

녀석이 덧붙였다. "10km도 못 가서 항상 차가 퍼져버리던데"

"기억을 날조하지 마시게 제군"

가볍게 응수한 후,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을 이어나갔다. 세번째 소절로 접어들 무렵, 녀석이 또 말을 걸어왔다.

"그거 쳐주겠다고 또 헛된 약속을 남발하고 온 게냐"

"헛된 약속이라니. 이름을 걸고 천지신명께 올린 맹약이다."

"오호, 흥미롭구먼. 돈 받고 하는 일도 여름방학 숙제처럼 미루기만 하는 자식이, 이렇게 내일 할 일을 오늘 몰아서 하는 게. 사회학적으로 아주 흥미로운 주제야. 춘부장께서 이 모습을 보면 조금이나마 혈압이 낮아지실 것 같군."

대꾸하고 싶었지만, 굳은 살이 많이 무뎌진 손가락에 베여드는 기타줄이 반론대신 희뿌연 신음소리만 입으로 보내고 있었기에 기운이 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건전한 동아리 활동을 위해 이토록 애를 쓰는 자신의 모습은 조금은 칭찬받아도 마땅하다. 칭찬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은 다소 아쉬운 요소지만.


천금같은 휴일을 모두 쏟아부은 결과 천신만고 끝에 1절을 모두 연습할 수 있었다. 며칠만 더 하면 완곡은 무리없이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늘 그렇듯 밤이 능구렁이 같이 방 안에 스며들자, 남사스럽게도 외로움이 지렁이처럼 이불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이불 속에서 꼬물꼬물대는 외로움을 퇴치하기 위해 나는 머릿 속으로 그녀를 그려 넣었다. 그녀를 그려넣고 보니 다소 배경이 허전하여, 다음 모임 때 모이기로한 카페를 좀 더 그려보았다. 아기자기한 카페에 홀로 앉아 있는 그녀는, 다소 민망한 말이지만 아름답다는 말을 얼렁뚱땅 붙일 수 있는 풍경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질긴 외로움이 질척대며 온 몸에 비비적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아름다움으로도 지울 수 없는 녀석의 극악무도함에 꼭 봉투 녀석 같았지만, 그쪽을 쳐다보면 즐거운 상상의 나래가 산산조각이 날 것이므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다만 정적을 먹고 점점 자라는 외로움을 경고하기 위해 자그마한 소리를 내보았다.

"흠냐흠냐"

당연하지만 잠이 없는 녀석은 그 소리를 듣고 또 입을 열었다. 한번쯤 그냥 지나쳐주는 에티켓은 도대체 언제 새길런지.

"야심한 밤에 망상은 금물이니라."

"망상따위 하지 않았다. 예술에 가까운 상상을 했을 뿐"

"보나마나 그녀에게 기타를 쳐주고 칭찬을 받는 것 따위의 저질스러운 생각이겠지"

바로 그것을 위해 정신을 가다듬은 것이나,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조차 하지 않았으니 이런 비난은 부당하다.

"하지 않았느니라"

"할려고 했겠지"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군. 나는 그런 의도따위 없었지만, 설령 의도가 있었다 하더라도 하지 않은 일 때문에 비난받는 것은 옳지 않다 이 녀석아"

"네 놈의 지난 망상들을 적어서 경찰서에 제출하면 그대로 철창행이야. 전과만으로도 입증은 충분하다."

시덥잖은 입씨름을 하루종일 해서 그런지, 범죄를 운운하는 녀석의 시비를 무시하고 본격적으로 망상에 빠졌다. 녀석은 창문 가운데에 있던 달이 어느새 창문을 벗어나 도망갔을 시간동안이나 지난 나의 망상들을 읊조려댔지만, 시속 200km로 질주하는 망상의 오토바이는 모든 소리들을 잡아먹고 달렸다. 오랜만에 썩어빠진 독자 제위들의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붙여두는 말이지만, 기타연주를 하는 상상에 몰두하다보니 다른 상상은 그려낼 틈이 없었다. 기타를 연주하는 손이 상상 속임에도 불구, 방자하게 제멋대로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망상이 아니라 예감인듯 하여 외로움이 있던 자리에 불안감이 차고 들었으나, 망각의 이불을 덮어쓰기 위해 작은 전등을 껐다.

방 안에 어둠이 켜지고, 상상의 방 역시 어둠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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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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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가 끝났다. 이 때에 이르러 굳이 생성과 소멸, 혹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고전적인 글귀들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다. 뇌리에 지나치게 가득 박혀있어, 영원을 탐하는 것조차 죄악으로 생각했던 나날들이 여전히 깊은 자욱을 내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 

독자의 내면에서 좋은 책으로 결정되는 순간은, 대부분 책장을 덮고 난 그 순간이다. 쏟아졌던 이야기로 들어가 한참을 유영한 뒤,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파리한 현실의 온도를 체감했을 때, 그 이야기가 쓰라린다거나, 아프다거나, 달콤하다거나, 따스해진다거나, 두려워진다거나, 뿌듯해진다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거나, 등등의 감상이 온전하고도 오롯이 보존될 수 있다면 그 책은 제법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꼭 그것이 책장을 덮은 찰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영위해가는 가운데 독자에게 주어지는 난제들, 또는 아주 쉬운 문제라 하더라도, 그것들과 마주하다보면 책을 덮은 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다시 생산된다. 이 괴랄한 논리를 전하면 그녀는 항상 모순덩어리의 존재였던 나를 대할 때 처럼 어이없어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끝났으되, 내게는 끝나지 않은 것과 같다. 


#2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나의 세계가 그다지 붕괴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8월 한 달간, 마지막 페이지가 코 앞에 있음에도 일부러 넘기지 않았던 나의 어리석음은, 역설적이게도 결말을 꽤나 편하게 맞을 수 있는 준비기간이 되어주었다. 스포일러를 잔뜩받은 영화는,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나 타오르기도 전에 식어버린 설렘을 준다. 문제는 공포영화였다는 것에 있지만.

로맨스 영화로 미화하기엔 솟아나는 두려움이 꽤나 컸기에, 나는 게으르고 미덥지 못하며 뭐든지 엉성하게 매듭짓는 그 특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결말을 한없이 미뤄왔고 그 결과 한꺼번에 받을 고통을 한 달간 할부로 받았다. 여전히 의아한 것은 그녀의 태도다. 그녀의 내적 세계는 대칭과 균형으로 잘 짜맞춰져 있는데, 나의 존재는 어쩌면 그동안 그 균형을 함부로 해쳐놓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더이상 그래야 할 이유가 그녀의 내면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 왜 미뤄뒀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더이상 중요해지지 않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거나, 그녀 역시 결말을 보기가 두려웠다거나, 아니면 항상 불안함을 표현하기만 했던 나에 대한 배려, 그 마저도 아니면 또 나의 단견이 닿지 않는 의미가 있거나,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으로 나는 그녀의 배려심이라 여기기로 했다.


#3

어떤 사람의 바닥 끝을 보고 난 뒤에 지쳐 쓰러지듯 고하는 이별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이별은 아쉬움을 기저에 깔고 또다른 감정들을 양산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그녀에게 투정부리듯 전했던,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희망사항에 대해 "생각해 볼게"라는 답을 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퇴보하는 나의 태도에 기인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아쉬움들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는 논리적 근거 역시 그녀가 만들어주었다. "그런게 꼭 나와 함께여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 그렇다고 일거에 아쉬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쉬움을 느끼기 전에 자신에 대한 회의와 비판으로 채울 수 있는 말이었다. 나의 희망이 타인의 이해와 배려 속에서만 꽃 필 수 있는 것이라면, 희망을 피우기도 전에 짓밟는 것이 좋다고 여겨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추악한 욕심이 생각의 줄기를 휘어잡았는지 모르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녀의 말대로, 내가 아무리 스스로 비판을 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선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을의 푸른 하늘을 보고 착각에 빠져, 어느 봄날 찬란하게 뿌려졌던 파란 하늘의 바다를 떠올리고, 여름의 끝자락을 고하는 키가 다 자란 풀들을 보고 망각에 빠져, 바람 세차게 불어 가슴 속과 망막에 맺힌 실루엣조차 흔들리게 했던 목장의 초록을 떠올리며, 차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목소리로 불려지는 "미안해 널 미워해"란 가사를 듣고 회상에 잠겨, 형형색색의 빛들이 요란했던 작은 방에서 보라보다 더 짙은 보라색으로 울려퍼지던 어느 목소리를 떠올리며,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을 찾다 무심코 시선이 멈춰버린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들을 보고 몽상에 잠겨, 멍청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글들의 책으로 엮어 감사의 말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놓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한없이 어리석은 시간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나의 존재와 그것을 칼로 자르기에는, 찰랑이는 물살이 너무 거세다.


#4

유감이지만, 나는 앞으로 그녀와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장 특별했기에, 0으로 수렴하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나는 어설프게 쌓아올린 누각으로 그녀를 모시려 했다. 그녀는 누각에 들어서자 곳곳의 금가고 빈틈 투성이인 곳에서 환멸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너와 나의 다름이 결국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용납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이 모든 것들이 다 한바탕 꿈이였노라 퉁치길 바라는 현재의 나를. 바라지도 않은 존재에게 꿈을 제멋대로 투영하고, 또 제멋대로 서운해하는 편협한 존재를 용납할 수 없기에, 그래서 타인에게도 전해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완전함이란 단어의 의미에 닿기에 상당한 양의 허점을 담고 있는 내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완벽에 가까왔다. 그녀라는 존재를 규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꽤 많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논리적이기도 하고, 또 대부분의 면에서 완벽주의적인 기조를 유지하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면의 논리구조로 격파하며, 아주 깊은 곳의 자리잡은 소녀적인 감성은 현실과 적절한 비율로 유지되며, 자신만의 이상세계가 뚜렷하고, 또 그것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알고, 그렇기에 타인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어리석음과 거리가 멀고, 또 필요를 느끼지 않음에 결핍조차 없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가 극명하고,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과 기저에 깔려있는 타인에 대한 집중력이 있다, 그 외에도 그녀를 설명할 문장은 상당히 많지만, 사실 그 어떤 문장으로도 그녀를 나타낼 수 없다. '어리석음'이란 단어로 완벽히 설명이 가능한 나와는 다르다. 그녀는 나의 모순적인 면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듯, 나는 그녀의 논리적 완벽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의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감정의 공간. 나는 그녀를 우주처럼 사랑했다. 


#5

모든 것들이 흐르고 난 뒤에 자리한 감정이, 즐거운 꿈에서 꾼 뒤에 느끼는 아쉬움과, 꿈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정, 그리고 꿈의 환상이 현실에 뿌리는 이해불가의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조차, 다시는 그녀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들게 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나의 세계와 맞닿아 그녀를 되새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원망같은 감정들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것들일 것은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이런 작품을 써준 작가에 대한 무량한 감사함이 피어오른다. 감사의 글이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추접했지만, 이 글은 본디 감사의 글이다. 활자를 찍어내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면 자리하는 갈비뼈 언저리에 가득한 감정이, 그녀가 처음 내가 사는 시골로 놀러온 그 때의 감사함과 비슷한 것이므로.

지혜로운 그대가 앞으로 그래왔듯,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갈 것임을 알기에, 남는 것이 감사함 뿐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픽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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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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