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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드러지게 피어오른 벚꽃이 흐물흐물한 버찌로 변했을 때쯤인가, 나는 길 건너 약국을 찾았다. 

2000년대 중반에 지어진 듯한, 상가와 원룸을 겸한 전형적인 건물 1층에 자리한 약국의 분위기는 건물의 외관과 다소 이질적이었다. 꽤 깔끔해보이는 건물 디자인에 비해, 약국엔 한약방에서 볼 수 있는 나무 상자들이 가득했고 약사님은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었다. 구매 목적을 생각하면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느릿느릿, 하지만 직업의 자부심을 잃지 않는 태도의 약사님 곁에는 부부인 것이 확실한 사모님이 계셨다. 그리고 난 들어선 지 30초도 되지 않아 그 사모님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약사님을 대하는 사모님의 태도가 지나치게 만화적이었기 때문이다.


사모님은 꼬박꼬박 '약사님' 호칭을 하는 것은 물론, 약사님의 모든 행동에 지근거리에 위치하면서도 약사님의 동선을 전혀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모든 일을 도왔다. 심지어 약봉투에 약을 넣는 것까지. 그냥 사모님 본인이 봉투에 넣어 손님에게 줘도 될 것을, 그냥 직접 카드를 긁고 영수증을 주면 될 것을, 희한하게도 사모님은 일처리는 거의 다 하고 마무리는 꼭 약사님에게 맡겼다. 이건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아니라, 그냥 목구멍에 넣어주고 턱을 위 아래 위위 아래로 움직이기만 하면 될 수준의 조력이지 않은가. 어지간해선 볼 수 없는 재밌는 광경에 나는 노부부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구경했다. 동년배의 나이로 보이는 어르신 손님들이 많은 덕에 대기시간은 꽤 길었다.

한참을 구경하자니, 벚꽃은 이미 길바닥의 쓰레기로 변했지만 일본 만화의 흐드러진 벚꽃이 떠올랐다. 벚꽃 아래 시골 저택, 무릎자세로 남편을 대하는 부인과 '고슈진'이란 낯간지러운 말을 써가며 부르는 목소리, 그리고 한없이 저자세인 듯한 태도까지. 건물도, 사람도, 삼성페이로 결제가 되는 포스기까지 모두 시간은 정상으로 흐르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었지만, 이 두 분은 마치 쇼와시대에서 훅 넘어오신 분들 같았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와는 다른 분위기가 풍겨졌다는 점이다. 

무릎을 꿇고 있는 그림이 떠오르니 괜시레 무냐무냐한 생각이 발그레 떠올랐지만, 지나간 추억에 참교육 당하는 것은 일상을 유지하기에 썩 좋은 일이 아니다. 고개를 휘젓고 계산대로 나아갔다. 구매 목적을 밝히자 약사님께 잠시 잔소리를 들었으나, 어쨌든 무사히 계산을 마치고 문을 나설 때, 약사님은 "잘가요"라며 흔한 동네 인심좋은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들려주셨다. 한 발 늦은 타이밍에 "안녕히가세요"라는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 잠시 고개를 돌려보니,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계신다. 황송하나이다, 라는 어투가 어울릴만한 광경이었다.




약사님을 다시 뵌 건 그 근처의 편의점에서였다. 자전거에 무거운 물을 실어가시려는 약사님을 잠시 도와주며 말을 걸 수 있었다. 누군가를 완력으로 도와줄 입장이나 처지가 되지 못한 것은 알지만, 그래도 70이 넘으신 할아버지보단 아주 약간은 나아 체면치레는 간신히 할 수 있었다. 약사님은 박카스를 건네며 잠시 의자에 앉으셨고, 나는 그 때의 궁금했던 바를 물었다.

약국의 개업년도는 무려 1962년. 반세기를 확실히 넘어선 곳이었다. 62년도엔 쏘오련과 천조국의 쿠바 미사일 위기가 불었고, 이탈리아에선 카톨릭의 대개혁을 이끈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열렸고, 알제리가 프랑스에서 독립했고, 칠레에선 월드컵이 열렸으며, 우리나라에선 제3공화국이 시작된 해다. 뭐가 됐든 까마득하기만 한 연도다. 그동안 약국의 건물은 두 번 새로 지어졌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드나드는 단골 손님은 딱 다섯 분만 남아계신단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어르신의 이야기와 나의 일상에서 공통점이라고는, 약국일도 이젠 지겨워서 빨리 그만두고 싶으시다던 한 마디 밖에 없었다. 젠장, 70살이 넘어도 일은 지겹기만 하다니. 40년 이상 남은 생애가 깜깜한 절벽 같기만 하다.

내가 쇼와의 이야기에 잠시 젖어들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사모님은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일본인이셨단다. 정확히 말하면 사모님의 부모님이 돌아가지 않으셨고, 쇼와의 분위기와 풍습은 그 가정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사모님은 지금도 아주 가끔, 명절정도 되면 유카타를 입으신다고. 약국 개업년도와 결혼식 년도가 같다는 할아버지의 멋쩍은 웃음에서 긴 시간을 함께 해온 부부의 신뢰가 느껴졌다. 

오그라드는 말과 행동이 험난한 세월을 헤쳐오며 쌓인 신뢰가 엑기스 가득 담긴 결과였다는 것, 슬쩍 본 것만으로도 느꼈던 것이나, 어르신과의 짧은 대화에선 느끼다 못해 어디를 잠깐 갔다올만큼 잔뜩 느껴졌다. 무릎을 꿇거나 속옷부터 겉옷까지 입혀주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으므로 타파해야 할 풍습으로 여겼던 때도 있었다. 신뢰가 요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요식이 신뢰를 만드는 척에 지나지 않는 것이므로 없어져야 한다고. 

어디까지 롤플레잉이 전제되어야 하지만, 그리고 그것은 때때로 즐거운 것이지만, '조건없는 대화'라는 말처럼'완벽한 관계'라는 말은 섬뜩하게 공허하다. 맞춰간다는 말도 그렇다. 퍼즐도 아니고 뭘 맞출 수 있는가. 코 앞에 있는 사람의 귀여운 볼을, 적절한 강도와 각도의 손바닥으로 맞추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거늘.

하지만, '고슈진사마'란 말을 들으면, 평소엔 일관되게 ㅣ의 형태를 유지하던 육체가 갑자기 ㅏ가 되는, 몰지각한 사람들도 분명 세상엔 많다. 나는 논외로 치자. 내가 그러한가 그러하지 않은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쨌든, 요식으로 공허를 채울 수 있다면 그것도 썩 괜찮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요식이 신뢰를 불러올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겠지.



생각해보니, 쇼와라는 연호에는 모든 신뢰가 와장창 무너졌던 기억이 담겨있다. 쇼와에서 신뢰를 도출해내려는 시도 자체가 어리석은 출발이었다. 어르신은 내게 관계가 주는 신뢰와 직업생활의 지루함 두 가지를 알려주셨는데, 떠나실 땐 후자만 남기셨다. 갓물주의 포쓰와 여유란 이런 것인가, 아득한 넘사벽에 다시한번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갓물주의 위대함에 탄복한 나는, 잃어버린 신뢰찾기를 멈추고 하던 잉여짓이나 마저해야겠다는 긍정적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으니, 이거야 말로 메데타시, 메데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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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세 마리  (0) 2017.12.25

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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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세 마리의 고양이를 만난다. 


개묘차라는 말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캐릭터가 명확하게 나뉘는 녀석들의 꼬라지를 지켜보자면 자못 우스운 생각이 들다가도, 동네의 대빵이 치즈(돼지)고양이 녀석의 무언가 오만하고 나른하며 사람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듯한 눈빛을 마주하면 열폭에 가까운 감정이 샘솟는다. 저 자식, 분명 방금 날 비웃은거지? 라며.


녀석의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벌써 몇 년을 본 건지 모르겠다. 녀석에게 딱히 밥을 주는 것은 아닌데 어디선가 알아서 잘 주워먹고 다니는지 예의 그 풍만한 풍채는, 단체로 식량난에 허덕여 수령님 만세를 부르는 북한 군인들처럼 날 보면 애교를 부리는 다른 동네 고양이 녀석들과는 달리, 놀랄만큼 줄지도 늘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그 풍채를 유지하는 게 자기관리인듯 했다. 

어디까지나 귀납적인 결론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녀석의 자기관리 비법은 예의 그 게으름이 아닐까 싶다. 녀석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극히 희박한 일이라, 한 겨울 담배피러 나와 벌벌 떠는 내 모습을 보며 하품만 쩍쩍 내뱉는 녀석에게 괜한 심술로 위협적인 포즈를 취해봐도 이내 고개를 돌리는 것이 고작이다. 녀석이 몸을 움직이는 때는 주로 두 가지인데, 무언가 먹을 것을 찾으러 가거나, 무언가 먹을 것을 가져온 동네 고양이를 삥 뜯거나. 

전자의 경우는 느릿느릿 슬금슬금, 한없이 잉여에 가까운 숫사자의 엉덩이와 비슷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하이에나를 줘패는 숫사자처럼 무섭기 그지없다. 여기서 다른 고양이가 등장할 때다.


전형적인 코숏인 또다른 동네 길냥이는 치즈대빵 녀석과 번갈아가며 등장한다. 치즈녀석이 산으로 가면 녀석이 반대편에서 뿅하고 튀어나오고, 치즈 녀석이 다시 하산하면 녀석은 금새 괴도 루팡처럼 스르르 사라진다. 치즈 녀석이 킹무성처럼 오만하고 게으르며 느긋느긋해서 사람의 열폭을 돋게 한다면, 녀석은 요리조리 살랑살랑 민첩하게 잘 피해다니는 타입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날, 치즈녀석이과 코숏이가 누군가 먹다 버린 참치캔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쓰레빠 질질 끌며 담배피러 나온 나는, 그 즉시 의자를 가져다 앉고 참관을 시작했다. 나는 일반적으로 육중한 캐릭터보단 날렵한 캐릭터를 좋아한다. 물론 더킹오브파이터의 김갑환과 장거한 중에선 장거한을 고르지만, 그 정도를 빼면 날렵한 캐릭터를 응원한다. 당연히 코숏이를 응원하며 패배할 치즈 녀석을 위한 육포를 준비했다.


그러나 40년 직장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 후 집에서 빈둥빈둥 노닥거리는 어느 아버지같던, 방금 세 끼를 부페를 다녀와 배가 불룩해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누워있는 내 친구같던, 겨울 방학숙제가 마감일이 내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그저 빈둥거리며 "몰라 손바닥 맞고 말지"라 넘기던 내 과거같던, 사파리 암사자의 하렘 속에서 하품이나 하다가 관광객이 몰려드면 매너리즘에 가득찬 리액션을 하는 것이 고작인 숫사자같던 그녀석이, 놀랄만큼의 스피드와 광속 냥냥펀치로 코숏이를 제압하더니, 이내 그 육중한 체급으로 코숏이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신경전으로 끝날 줄 알았는데, 저 녀석들, 꽤 심각하다.


아무튼 육포라는 데우스엑스마키나를 던지며 시합을 종료시켰지만, 코숏이는 나름대로 상처를 입은 듯 했다. 육포를 입에 물고 고새 어디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치즈녀석을 보니, 이 자식, 언제 그랬냐는 듯 도로 그 게으르고 오만한 표정으로 입에 묻은 참치 기름을 낼름낼름 핥고 있다. 녀석의 태연함에 부아가 치밀어올라 참치캔을 치워버렸지만, 이미 깔끔하다. 


그때야 나는 깨달았다. 녀석이 누굴 줘 팰 때와 뭔가를 쳐묵할 때 만큼은 우사인볼트의 달리기나 아웃사이더의 랩핑보다 빠르다는 걸. 저 오만하고 게으른 모습이 사실은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숨기기 위한 위장술이었다는 걸. 몹쓸 자식같으니라구.


그 뒤로 코숏이는, 전보다 더 치즈 녀석을 경계했다. 아니 이젠 치즈가 햇볕 좋은 오후, 따스한 햇살에 취해 조느라 고개를 꾸벅거릴 때, 사정없이 꾸벅거리는 졸린 눈을 어쩌다가 마주할 때면 부리나케 튀어 바람과 함께 사라져버렸다. 전혀 힘을 주지 않은 눈빛임에도 누군가를 떨게 하는 힘, 노란치즈돼지녀석에게는 태생적으로 마초적 기질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것은 가끔씩 나도 희망하는 바이긴 했다.


시간이 좀 지난 후, 가게에서 길냥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물론 내 고양이는 아니다. 만사가 귀찮고 잘 챙길 자신도 없는 나는, 동물을 키우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연애도 안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두자. 


누구를 잘 챙길 자신은 없지만 치즈돼지녀석과 코숏의 관계가 인상에 남은 뒤로, 나는 새로 만난 길냥이를 눈빛으로 제압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을 했다. 8개월이 지났다. 녀석은 나름대로 잘 자라주었다. 오늘 나는, 유난히 까부는 듯한 녀석을 제압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잔뜩 찡그리며 위엄있는 어조로 명령을 내렸다. 녀석은 말을 잘 들었다. 발 빝에서 식빵을 구우며 나를 올려다 본 채 경청중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 만족함과 흡족함이 피어올랐다. 짜식, 키운 보람있구먼. 내 얘기가 끝나자, 녀석에게서 냥냥펀치가 날아왔다.


고양이도 못 다루는 데 누군가와 원만하고 이상적인 관계를 맺기란 애시당초에 틀렸다는 결론을 새삼 확인하며, 험난한 새디스트의 길을 걸으며 욕망을 성취하기 보다, 가까운 떡볶이 집의 소소한 행복에 감사하며 대충 떼우고 살자는 현자타임에 젖어본다. 아니, 조금 더 깊게 사유해보자면, 고까운 것을 보면 냅다 냥냥펀치를 후리는 녀석들처럼, 아름다운 사랑의 현장을 보면 냅다 죽창을 후리는 열사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각이 거듭되는 가운데,

치즈녀석의 한심한 표정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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