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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야기가 끝났다. 이 때에 이르러 굳이 생성과 소멸, 혹은 만남과 이별에 관한 고전적인 글귀들을 되새기고 싶지는 않다. 뇌리에 지나치게 가득 박혀있어, 영원을 탐하는 것조차 죄악으로 생각했던 나날들이 여전히 깊은 자욱을 내고 그 안에 도사리고 있으니. 

독자의 내면에서 좋은 책으로 결정되는 순간은, 대부분 책장을 덮고 난 그 순간이다. 쏟아졌던 이야기로 들어가 한참을 유영한 뒤, 이야기에서 빠져나와 파리한 현실의 온도를 체감했을 때, 그 이야기가 쓰라린다거나, 아프다거나, 달콤하다거나, 따스해진다거나, 두려워진다거나, 뿌듯해진다거나,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거나, 등등의 감상이 온전하고도 오롯이 보존될 수 있다면 그 책은 제법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꼭 그것이 책장을 덮은 찰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삶을 영위해가는 가운데 독자에게 주어지는 난제들, 또는 아주 쉬운 문제라 하더라도, 그것들과 마주하다보면 책을 덮은 순간은 새로운 시간으로 다시 생산된다. 이 괴랄한 논리를 전하면 그녀는 항상 모순덩어리의 존재였던 나를 대할 때 처럼 어이없어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야기는 끝났으되, 내게는 끝나지 않은 것과 같다. 


#2

생각해보면, 이야기가 끝났음에도 나의 세계가 그다지 붕괴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라 생각한다. 8월 한 달간, 마지막 페이지가 코 앞에 있음에도 일부러 넘기지 않았던 나의 어리석음은, 역설적이게도 결말을 꽤나 편하게 맞을 수 있는 준비기간이 되어주었다. 스포일러를 잔뜩받은 영화는, 지나치게 높아진 기대나 타오르기도 전에 식어버린 설렘을 준다. 문제는 공포영화였다는 것에 있지만.

로맨스 영화로 미화하기엔 솟아나는 두려움이 꽤나 컸기에, 나는 게으르고 미덥지 못하며 뭐든지 엉성하게 매듭짓는 그 특유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결말을 한없이 미뤄왔고 그 결과 한꺼번에 받을 고통을 한 달간 할부로 받았다. 여전히 의아한 것은 그녀의 태도다. 그녀의 내적 세계는 대칭과 균형으로 잘 짜맞춰져 있는데, 나의 존재는 어쩌면 그동안 그 균형을 함부로 해쳐놓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더이상 그래야 할 이유가 그녀의 내면에서 사라졌음에도 불구, 왜 미뤄뒀던 것인지 알 수 없다. 더이상 중요해지지 않아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거나, 그녀 역시 결말을 보기가 두려웠다거나, 아니면 항상 불안함을 표현하기만 했던 나에 대한 배려, 그 마저도 아니면 또 나의 단견이 닿지 않는 의미가 있거나,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을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으로 나는 그녀의 배려심이라 여기기로 했다.


#3

어떤 사람의 바닥 끝을 보고 난 뒤에 지쳐 쓰러지듯 고하는 이별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이별은 아쉬움을 기저에 깔고 또다른 감정들을 양산하게 된다. 나의 경우는 아쉬움이 가장 컸다. 그녀에게 투정부리듯 전했던,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이 엄청나게 많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희망사항에 대해 "생각해 볼게"라는 답을 전했는데, 시간이 갈수록 퇴보하는 나의 태도에 기인한 대답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아쉬움들을 더이상 느끼지 않아도 되는 논리적 근거 역시 그녀가 만들어주었다. "그런게 꼭 나와 함께여야 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 그렇다고 일거에 아쉬움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쉬움을 느끼기 전에 자신에 대한 회의와 비판으로 채울 수 있는 말이었다. 나의 희망이 타인의 이해와 배려 속에서만 꽃 필 수 있는 것이라면, 희망을 피우기도 전에 짓밟는 것이 좋다고 여겨왔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추악한 욕심이 생각의 줄기를 휘어잡았는지 모르겠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그녀의 말대로, 내가 아무리 스스로 비판을 해도 개선이 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선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을의 푸른 하늘을 보고 착각에 빠져, 어느 봄날 찬란하게 뿌려졌던 파란 하늘의 바다를 떠올리고, 여름의 끝자락을 고하는 키가 다 자란 풀들을 보고 망각에 빠져, 바람 세차게 불어 가슴 속과 망막에 맺힌 실루엣조차 흔들리게 했던 목장의 초록을 떠올리며, 차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목소리로 불려지는 "미안해 널 미워해"란 가사를 듣고 회상에 잠겨, 형형색색의 빛들이 요란했던 작은 방에서 보라보다 더 짙은 보라색으로 울려퍼지던 어느 목소리를 떠올리며, 도서관에서 새로운 책을 찾다 무심코 시선이 멈춰버린 모리미 도미히코의 책들을 보고 몽상에 잠겨, 멍청하고 조잡하기 짝이 없는 글들의 책으로 엮어 감사의 말에 그녀의 이름을 적어놓는 꿈을 꾸게 되는 것이다.

어리석은, 한없이 어리석은 시간은 언제까지나 나와 함께 할 것이다. 나의 존재와 그것을 칼로 자르기에는, 찰랑이는 물살이 너무 거세다.


#4

유감이지만, 나는 앞으로 그녀와 같은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가장 특별했기에, 0으로 수렴하는 가능성을 무시하고 나는 어설프게 쌓아올린 누각으로 그녀를 모시려 했다. 그녀는 누각에 들어서자 곳곳의 금가고 빈틈 투성이인 곳에서 환멸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너와 나의 다름이 결국 이해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다. 나는 용납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던 과거의 나는 어디로 가고, 이 모든 것들이 다 한바탕 꿈이였노라 퉁치길 바라는 현재의 나를. 바라지도 않은 존재에게 꿈을 제멋대로 투영하고, 또 제멋대로 서운해하는 편협한 존재를 용납할 수 없기에, 그래서 타인에게도 전해주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불완전함이란 단어의 의미에 닿기에 상당한 양의 허점을 담고 있는 내가 그녀에게 양해를 구하기엔 그녀는 너무나 완벽에 가까왔다. 그녀라는 존재를 규명할 수 있는 수식어는 꽤 많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며, 논리적이기도 하고, 또 대부분의 면에서 완벽주의적인 기조를 유지하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는 내면의 논리구조로 격파하며, 아주 깊은 곳의 자리잡은 소녀적인 감성은 현실과 적절한 비율로 유지되며, 자신만의 이상세계가 뚜렷하고, 또 그것을 온전히 느끼는 법을 알고, 그렇기에 타인에게서 존재 이유를 찾으려는 어리석음과 거리가 멀고, 또 필요를 느끼지 않음에 결핍조차 없으며,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경계가 극명하고, 놀라울 정도의 기억력과 기저에 깔려있는 타인에 대한 집중력이 있다, 그 외에도 그녀를 설명할 문장은 상당히 많지만, 사실 그 어떤 문장으로도 그녀를 나타낼 수 없다. '어리석음'이란 단어로 완벽히 설명이 가능한 나와는 다르다. 그녀는 나의 모순적인 면을 이해하기 어려워했듯, 나는 그녀의 논리적 완벽성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만큼의 사랑스러운 그녀였다. 이해의 영역을 아득히 뛰어넘은 감정의 공간. 나는 그녀를 우주처럼 사랑했다. 


#5

모든 것들이 흐르고 난 뒤에 자리한 감정이, 즐거운 꿈에서 꾼 뒤에 느끼는 아쉬움과, 꿈을 이루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부정, 그리고 꿈의 환상이 현실에 뿌리는 이해불가의 것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조차, 다시는 그녀같은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강한 암시를 들게 한다. 앞으로는 어떤 이야기가 나의 세계와 맞닿아 그녀를 되새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원망같은 감정들과는 한없이 거리가 먼 것들일 것은 분명하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항상 이런 작품을 써준 작가에 대한 무량한 감사함이 피어오른다. 감사의 글이라고 보기에 지나치게 추접했지만, 이 글은 본디 감사의 글이다. 활자를 찍어내는 손가락을 타고 올라가면 자리하는 갈비뼈 언저리에 가득한 감정이, 그녀가 처음 내가 사는 시골로 놀러온 그 때의 감사함과 비슷한 것이므로.

지혜로운 그대가 앞으로 그래왔듯, 앞으로도 아무런 문제없이 살아갈 것임을 알기에, 남는 것이 감사함 뿐이라는 것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낀다.



픽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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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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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귀찮다고 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이겠다. 상대에게 굉장한 실례가 되는 표현이라는 것 알고 있지만,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이다. 답을 하는 행위 자체를 일종의 의무이행 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또 간사한 것은, 때때로 어떤 사람과의 대화가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즐거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모조리 집어치고 대화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마법같은 시간이 있다. 백이면 백, 나는 그 사람과 몹시 가까운 사람이 되기를 희망하곤 한다. 그러다가도 또, 어느 시점이 되면 그 사람과의 대화가 귀찮아지곤 하니, 간사하다는 표현으론 부족할 정도로 최저의 인간이기도 하다. 

대화란 것은 때때로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초원과 수많은 생명을 낳는 강물이 넘실대기도 하지만, 또 위구르의 사막처럼 메마른 강바닥에 푸석한 모래만 남아 황량하기 그지없는 풍광에 절망스러워질 때도 있다. 그렇게 된 연유가 감정의 고갈인지, 화제의 고갈인지, 시간의 고갈인지는 때에 따라 다르다. 감정의 고갈이라면 귀찮다는 느낌이, 화제의 고갈에는 절망스런 마음이, 시간의 고갈이라면 그리움과 불안함이 뒤섞이곤 했다.

나는 그리움과 불안함이 혼재되어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2

요즘 그녀는 부쩍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녀의 커리어가 어떤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균형과 대칭에 극도로 신경쓰고, 스스로도 완벽주의적인 스타일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얘기할만큼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바쁜 업무를 수행할 것이 상상된다. 이러다보니 서로 하루의 패턴이 다른 만큼, 대화의 시간도 비약적으로 줄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온전한 평정심으로 대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소인배가 어디가랴. 나는 줄어드는 시간처럼 그녀 안의 내가 줄어들고 있을까봐 불안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고 매일 같이 징징댈 수는 없는 일이다. 아니, 그럴 수야 있지만 이후에 찾아들 초라함을 나는 감당할 수 없다.

'무의미한 대화가 이어질 때에 드는 슬픔'에 대해서 그녀가 말한 적이 있었다. 나는 불안함을 감추기 위해 답장하기 힘들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잤어?' 나 "오늘도 덥네" 따위의 보잘 것 없는 안부를 묻곤 한다. 안부를 묻는다는 명분과 함께. '의미있는 대화'에 대해 허접스런 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안부를 묻는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상대의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것은 사실 나의 위안감을 위한 위선이었음을. 그렇다고 걱정하는 마음이 전혀 없다고 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지만. 실제로 나는 걱정이란 물음표 때문에 일상이 흔들릴 때가 종종 있으니.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주말을 기대할 수 밖에 없다. 예전에도 이런 때가 있었는데, 아직 퇴사하기 전이었던 그녀는 무척이나 바빠보였고, 나는 그녀가 내가 같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주말을 기다렸다. 그녀와 대화할 거리를 되새기거나, 그녀의 의견을 묻고 싶은 것들을 정리하곤 했었는데, 요사이의 내가 다시 그 행위를 반복하고 있으니, 이 소인배적 기질에 더없는 자기혐오가 든다. 피어나는 그리움과 함께. 여러 감정이 뒤죽박죽된 마음가짐을 버리고 온전히 비워진 마음으로 그녀를 담을 수 있다면 참 좋으련만. 


#3

"아무리 대화를 이어가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어?" 란 그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서로 간에 나눴던 대부분의 대화를 기억하는 그녀에게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무심한듯 대답하는 그녀가 실은 상당한 신경을 쏟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굳이 자신의 패턴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새벽 시간의 나를 기다려주었던, 그 덕에 지금 하는 일 따위 모조리 집어치워 버리고 하루 종일 얘기만 하고 싶다고 느꼈던, 측량이 불가능할 정도로 즐거웠던 그 시간을 사실 상당한 정도의 그녀의 배려가 있었음을 나는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나는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이런 저런 화제를 챙기고 있었지만, 사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단순히 즐거운 시간을 위해 소모하는 대화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제야 알아차린 것은 아니지만,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대화를 이어가지?" 란 부담감 - 솔직해진다면 서운함 - 이 들었기 때문에 온전히 마주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아쉬움이 들고 나서야 사실을 알아차리는 이 무지막지한 옹렬함, 소위 '엽전'같은 태도엔 '이제서야 알게 됐다' 는 류의 노래를 수없이 부르는 김동률도 한심한 듯 나를 쳐다볼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오로지 소모하기 위해 그 시간을 기다렸냐고 자문해보면, 꼭 그렇지는 않다. 10편째 쓰고 있는 이 졸렬한 글에 다 담지 못한 마음, 그것이 어떤 언어로 표현해 내야 할 지 잘 모를 때가 있는 마음은 그때보다 무겁고, 그때보다 그립다. 내가 그녀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녀가 내게 실망했다면 참 쓰라린 사실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고 은폐하는 것처럼 후일 바보같은 짓은 없을 것이다.


#4

"너는 생각만 하고 행동이 안 바뀌는게 제일 문제야" 라는 그녀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문제를 마주하고 반성하는 것은 익숙한 만큼 쉽지만(사실 정말로 솔직하게 마주했냐에 대해선 때때로 문제의 소지가 있었지만) 기억에 대한 깊은 고민이 든다. 기억하는 것, 기억하기 위해 그녀와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을 넘어 조금 다른 자세로 임하는 것. 

공전을 반복하며 공존하는 것에는 서로의 중력이 모두 필요하다. 여기선 보이지 않지만 달의 뒷면엔 충격적이리만큼 무수한 상처가 있고, 비록 물로 가득차있지만 바다에는 지구의 소멸을 넘나드는 상처가 있다. 하루에 두번, 지구와 달은 조수간만으로 대화하고 있지만, 그것의 정도도 역시 날마다 조금씩 다르다.

나는 그녀가, 그녀와의 대화가 마냥 그립다. 마냥 그리워하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계속 공전하기 위해서, 결국 공존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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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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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일랜드를 꿈 꿔왔다. 원스를 접한 순간부터. 

20세기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종종 한국을 '아시아의 아일랜드'라고 칭할 때가 있었다. 오랜 세월 잉글랜드에 핍박 받아온 아일랜드의 역사를 일제 치하를 겪은 한국에 빗댄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 숨어있는 정서적 동질성을 빗댄 말이기도 하다. 물론 아일랜드의 단 한번도 가 본 적 없지만, 그들의 삶과 우리네의 삶은 현저히 다르다. 먹는 음식에서부터 생활하는 습관까지. 하지만 나는 아이리쉬 음악을 들으면, 서편제에서 듣던 억눌린, 구슬픈,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래하는 그 음율을 듣곤 했다. 영화 <원스>에서 접한 아일랜드 뮤지션의 포크송들은 한편 , 세시봉 이후에서 김광석, 유재하에 닿아있는 한국 포크송을 들었을 때의 감정과 같은 편린들을 가슴에 남기고 흘러갔다. 오래도록 그들의 음악은 내 플레이리스트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런 만큼이나, 누군가 원스 음악을 단순히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세세한 이야기들을 알고 나아가 영화 곁가지에 서린 이야기들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오래도록 했었다. 물론 언젠가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과 함께. (아일랜드로 가는 비행기표와 그곳의 물가를 알아 본 순간 그 희망은 무기한 보류 딱지를 붙여놓았지만)


#2

그녀가 음악을, 그것도 아주 다채로운 장르로 좋아한다는 사실은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운 면모이다. 일본의 애니 음악부터 비와이까지. 장르를 종잡을 수 없는 음악 섭렵은 그녀와 나 사이에 벌어져 있을 것으로 예상했던, 예상했던 것보다 더 컸던 그 간극을 채워주는 소중한 은하수가 되어주었다. 김동률의 음악을 마음 편히, 하루 종일 흥얼거릴 수 있다는 사람이 곁에 함께한다는 것은 개인의 역사를 비춰볼 때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의 요소이다. 행복과 불행은 종이 한 장 차이라지만, 이토록 사소한 것에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본적으로 회의주의자를 자청했던 내 자신에 놀라곤 한다.

행복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가는 칸트 이전의 철학가들에게 끝없이 고민거리가 되었던, 동시에 수천년간 풀지 못한 난제였다. 칸트조차도 그 물음에 빗겨가는 법을 택했지만, 이후로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다소 사그러들게 되었다. 희노애락의 인간사 중에서 희와 락의 비율이 가장 적지만, 작기에 더 없이 소중한 희와 락의 비율로 나머지 80퍼센트를 채운 노와 애, 그리고 무덤덤한 일상을 견딘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한 달에 한 번 꼴로 봐왔던 그녀의 작고 총총한 눈빛으로 나는 나머지 27일 가량을 살아가곤 했다. 물론 그녀가 없었다 하더라도 그럭저럭 잘 살았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그러나 그녀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세상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면, 나는 붓에 먹물을 듬뿍 찍어 몇번 휘두른 후 '이것이 산, 이것이 강'이라며 우겨댈만한 수묵화를 그리는 것과 색깔마다 조심스레 물을 부어 그 농도를 맞춘 뒤, 수차례의 꼼꼼한 붓질로 색을 메워가는 수채화의 차이라고 답하겠다. 무엇이 전자이고 후자인지는 굳이 덧붙일 필요가 없겠다. 


#3

하지만 행복이란 것도 그리 간단한 녀석이 아니다. 행복 안에 담겨 있는 또다른 희노애락을 무시할 수는 없다. 행복이 마치 저 찬란한 극락정토나 유토피아나 무릉도원의 주거자들이 매일 같이 느끼는 감정에 가까운 것이라면, 나는 기꺼이 이승을 택하겠다. (써놓고 보니 다소 겁이 들지만) 매일같이 행복에 젖어 산다면,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될 것이다. 마약에 쩔어있는 사람들처럼.

티비에선 아일랜드로 버스킹을 떠난 뮤지션들이 나오고 있었다. 평소 유난히 좋아하던 두 사람이 여정에 함께하고 있어 기대할 수 밖에 없는 프로였다. 비록 몸은 피곤함 - 항상 그녀에게 미안해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그 피곤함 - 에 눅눅히 젖고 있었지만, 내 눈은 브라운관에서 펼쳐지는 아일랜드의 녹음에, 내 귀는 그 가수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음악들에 맞춰져 있었다.

내 코를 간지럽히는 내음이 익숙해지지 않는, 코를 갖다 대면 늘 심장의 '내가 여기 있다고!' 라며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되는 그녀의 체취가 함께 했다는 사실이, 그 시간을 특별한 기억으로 간직하게한 중요한 요소였던듯 하다.

웬만해서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조금이라도 눈물을 흘릴 기회가 있으면 되도록 멀리하던 내가 어째서 그 장면에서 덧없는 화학작용을 느끼게 된 것인지 아직도 알 수 없다. 눈꺼풀이 뿌옇게 되고 초점이 흐려질 때가 되어서야 그 사실을 자각했다. 여전히 브라운관에서 음악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녀는 평소같은 표정으로 티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고 놀리듯 말을 거는 그녀 덕분에 곤란하고 민망한 상황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탈출하고 나서야 감정의 파도를 막고 있던 방파제가 무너질 위기에 놓여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 묘한 감정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른다.


#4

정확히는 모르지만 대략적으로 추측할 뿐이다. 행복이란 감정이, 눈을 감고 홀로 어둠에 휩쌓여 때때로 날 괴롭게 하던 불안함이 눈 녹 듯 사라져 함께하는 존재를 느끼고 어둡지만 충만한 빛을 느끼는 것이거나, 속절없이 쏟아지는 슬픔 속에서도 존재 덕분에 나는 괜찮을 수 있다는 근거없는 확신이 기저에 깔려있다거나,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으면 곧 침몰하려던 배같던 감정이 기적처럼 솟구쳐 다시 항해를 이어나간다거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형수처럼 오늘 이 순간이 차라리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거나, 그러면서도 다시 내일을 기약하며 한 때의 이별을 감내할 용기를 갖게 한다거나, 그녀의 화난 목소리를 들을 때 조차도 미안함만으로 가득차 사고의 매커니즘을 모조리 파괴한다거나, 그로인해 나의 존재 이유에 또 하나의 이유를 추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게한다면, 대략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코가 시큰해지고 눈이 흐려지는 시간은 참으로 짧았지만, 나는 그보다 길게, 그 묘한 감정에 젖을 수 있었다.


#5

뒤돌아 눕고, 뒤돌아 앉은 그녀를 바라볼 때의 심정은 분명 행복과는 부산에서 모스크바를 향해 떠난 여행객처럼 몰아치는 추위와 지난한 거리에 당혹감, 지난 결정에 대한 미안함과 후회들로 가득찼지만, 그녀는 또 한번 자신을 다독이고 나를 향해 웃어주었다. 어떤 고민도 해결되지, 아니, 해결하지 않았지만, 

속절없이, 염치없이, 좋아하는 마음만 깊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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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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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려왔던 상황을 헤어짐에 즈음해서 아주 약간만 느낄 수 있을 때의 감정이란 잔인하다고 하면 다소 지나치고, 마냥 기쁘다고 하기엔 다소 미치지 못한다. 적확한 표현을 찾기에 꽤 골치아프니 잔인함과 기쁨 사이 어드메라고 정해두자. 사람을 만나는 일이, 아니,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어찌 기쁘지 아니할 수 있을쏘만, 기쁨에도 곡선이 있고 슬픔에도 그래프가 있다. 사랑에 있어서도 돈오점수. 계단을 오를 때 어떤 계단은 무릎이 쑤실 정도로 아프고, 어떤 계단은 또 이카루스처럼 가볍다. 좋아하는 일도 그와 같으니, 기쁨에도 강도가 있다는 말이 결코 변명은 아니라 할 수 있다. 

주저리 늘어놓을수록 변명같이 느껴지겠지만.


#2

나는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대체로 먼저 잠이 들고 나지만, 그러하기에 먼저 잠이 깬다. 함께 있을 때, 째깍째깍 흘러가는 귀중한 시간들이 잠결 사이로 사라지고 있다는 자각이 일순간 몰려오고, 이윽고 쏟아지는 상실감에 몸서리치듯 잠이 깨고 나면, 옆자리에 새근새근 잠이 든 그녀의 모습이 있다. 여전히 수마의 횡포에 완전히 저항하지 못한 채, 그녀를 관조한다. 그것이 좋다. 무엇이 좋냐고 되묻는 이들을 위해(아무도 없겠지만) 굳이 주석을 달아본다.

머리를 쓰다듬을 때 손가락 사이로 흐드러지는 검은 머리칼, 머리칼 끝에 닿아있는 여리기에 조르고 싶은 목선, 목선이 내려간 곳에 빼꼼, 그러나 그녀처럼 단호하게 뻗어있는 쇄골이 좋다. 그녀와 내 사이에서 어디로 뻗어야 할지 몰라 길을 잃은 채 그저 내 가슴에 목적지를 정해놓은 한 쪽 팔, 인형을 안고 자는 잠버릇 덕분에 끌어안을 것을 찾다가 아쉬운대로 나의 등을 감싸안는 다른쪽 팔도 물론 좋다. 양 손에서 느껴지는, 지나치게 따스워 에어컨을 틀어야만 하는 온기는 빼놓을 수 없다. 이불 속에서 침대 끝을 향해 뻗어있는 다리와, 깍쟁이처럼 빼꼼히 존재를 보여주는 올망졸망한 두 발도 좋을 수 밖에 없다. 영원히 빨려들어가도 오케이라며 납득할 수 있는 검은 눈동자, 그것을 사뿐히 포개고 있는 눈꺼풀과 휘어져 솟아오른 눈썹들, 예의 그 고집을 누가 말릴쏘냐! 라며 인정할 수 밖에 없이 곧게 뻣은 콧날, 약간 벌어진 채 꿈을 내쉬고 있는 그 입 조차도 의심할 수 없을만큼 좋다. 좋아하는 마음이 때론 지나쳐, 그녀의 앞머리를 망쳐놓고 이마를 드러낸 다음, 대지를 향해 키스하는 흉내를 낼 때도 있다. 

물론 잠이 든 그녀는 모를거라는 확신과 함께.


#3

그녀의 체온이란 참 미묘해서, 이불을 덮으면 삽시간에 뜨거워져서 "에어컨 틀어줄까?"라고 묻는 내 질문에 "응"이라는, 잠에 취한 상태에서 내뱉는, 그래서 깨고나면 자신이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나즈막하고 취한 대답이 좋다. 또 이불을 걷어차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노라면 이번엔 급격히 차가워진다. 나는 다시 이불을 두툼히 덮어주고 에어컨 온도를 조정해 놓는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젠 묻지도 않고 알아서 에어컨을 조정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좋은 일이다. 나를 바라보며, 끌어안던 그녀의 양 볼이 어느새 열감기에 걸린 아이처럼 새빨개지고 어느새 내게서 몸을 돌릴 때는 에어컨을 틀 때가 된 것이고, 돌아선 그녀의 몸에서 점점 하얗게 변하고 빨갛던 볼 마저 시린듯한 색으로 변해가면, 나는 다시 이불을 제대로 덮어주고 뒤에서 끌어안는다. 

물론 잠이 든 그녀는 모를거라는 확신과 함께.

냉탕과 온탕을 수십번 반복하는 그녀의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쩌면 수면조차도 그녀의 내면을 따라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뜨거워질 듯 따스한 내면의 온기와, 북방의 세찬 바람처럼 무신경한 말들의 반복. 나는 새로운 모습을 보고나면 그 모습조차 좋아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되묻곤 하는데, 고민하거나 스스로를 설득할 필요도 없이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곤 희망한다. 그녀의 마음 속에도, 내 마음속의 그녀처럼 내가 파고 들기를. 무책임하다거나 지나치게 뻔뻔해 보인다는 것, 인정하는 바이지만, 일단 희망사항이니까 그려러니 해 두는 것이 일신상의 이유로 좋겠다.

좌우지간 나는 여전히 그녀의 가녀린 두 팔이 내 목을 끌어안고, 새근대는 잠소리를 코가 맞닿은 채 다시 듣기를 그리고 있으니, 모든 것을 인정할 줄 아는 나도 차마 이렇게 인정하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지만, 그녀에게 푸욱, 아니, '늪에 빨려가듯 슬그머니, 다리가 잠기고 배가 잠기고 가슴께가 잠기고 곧 목 조차 잠길 정도로' 아주 약간, 빠져있다는 것을 인정하고자 한다. 


#4

비가 왔다. 떠나는 길에. 미처 비라 불리기에 민망할 지경의 비였다만, 팔에 송송 나있는 솜털에 흐릿하고 투명하고 아주 작은 빗방울이 방울방울 맺어지긴 했으니, 비가 오긴 했다. 나는 트렁크에서 우산을 꺼냈다.

비 오는 날을 좋아한다는 것은 굳이 증명이 더 필요하지 않은 사실이다. 비 오는 날을 싫어했던 연유는 홀로이기 때문이었고, 좋아하게 된 것 조차 홀로이기 때문이었는데, 둘이 되고 나니 더욱 좋아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지나치게 짧아서 안타깝기 그지 없었지만, 나는 더이상 시간을 빌릴 수 없었고, 살아가는 이로써 해야할 의무를 다시 짊어져야만 했다. 

오늘 밤엔 비가 세차게 왔다. 와이퍼 속도를 최대로 올려도 차창으로 흐르는 빗물의 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간간히 번뜩이는 번개와 뒤늦게 쿵쾅대는 천둥소리가 저 멀리에서 요란했다. 어둠 속을 헤치고 나아가는 차들의 라이트는 빗물에 휘어졌다.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부여잡아도 주체할 수 없는 미끌림, 차는 좌우로 흔들리고 타이어가 지난 자리에 물 웅덩이가 솟구친다. 저 멀리 빨간불, 조심스레 브레이크를 밟았다. 흐르는 노래는, Standing in the rain. 이만하면 충분했을 밤이었다. 허나,

부족한 시간에 미약한 빗물일지라도, 하나의 우산 밑, 빗물이 흐르는 날 곁에 함께한 그녀를 알아버렸다. 그 날을 기억하고 있다. 하여 충분하지 않은 밤이 되고 말았다. 나는 조수석에, 옆 의자에, 옆 자리에 함께하는 그녀를 그린다. 비 내음이 우리를 감싸안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되기를. 더없이 좋아하는 마음이 피어올라 어쩔 줄 모르는 내가 되기를.

물론 그녀는 모를거라는 확신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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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할 때가 있다.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상대적이라, 나의 시간은 덧없음을 빙자하여 도도한 강물의 흐름처럼 유속이 느려, 더디게 흐르고 디딜 곳도 없이 유영하곤 했다. 튜브하나만 있어도 흘러 흘러 어딘가로 나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침몰하는 돛단배의 생채기에도 거뜬없이 나아갈, 나아가야만 하는, 나아갈 수 밖에 없는, 모든 필연이 겹쳐지듯 살아가리라 생각했다.

때론 그렇지 않다는 것을 간과했었다.


#2

모든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할 때가 있다.

평온을 가장해 흐르던 물이 수문에 닿을 때, 그것이 인위로 가공된 평온이었음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혹은 외면하고 있을 때, 불현듯 수문은 열리고 왈칵 쏟아지는 강물을 본다. 뒤바뀌는 환경에 더없는 혼란이 일시에 밀려오게되니, 튜브는 터지고 물은 차오르며 숨이 막혀오곤 한다. 의식의 줄기가 희미한 빛을 내며 사라져갈때쯤, 이 짧은 시간안에 일어난 모든 것들을 되새겨보곤 한다. 그 때의 시간은 찬란한 빛에 닿을 것 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너무 빠르게 지나서 미쳐 살펴보지 못한 것들을 후회한채로.

마음이 한 곳으로 쏟아져내릴 때의 나는, 시간의 틈새에서 엿 볼 수 있는 보지 못한 채, 쏟아지듯 흘러넘친 감정의 과잉에 익사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3

그러나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와중에도, 시간은 엿가락처럼 늘어났다가 줄어들곤 한다. 한없이 이끌려가는 그녀의 존재가 주워진 짐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 탓에 내 안에 잠시 옅어질 때, 혹은 더 이상 흐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과 초조함에 애꿏은 하늘 탓만 하고 있을 때, 흘러 흘러 닿을 바다에 이미 물이 가득차 내가 들어갈 곳이 없어 보일 때, 시간은 오뉴월 찌는 더위에 풀려버린 실타래처럼 늘어난 오후 2시의 시간처럼, 그렇게 증발하여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던 때로 돌아갈 것만 같다.. 나의 존재가 희미해지고, 그리하여 그녀 안에 살고 있는 또다른 나의 존재도 옅어지면, 망각의 문을 넘어서 무위의 언덕으로 사라질 것 같다.

하지만 그리 될 수가 없는 법이다. 나와 대칭을 이루고 있진 않지만, 그녀의 존재가 살아가는 방이, 이미 내 안에 한 자리를 꿰어차,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그녀의 반짝이는 눈, 하늘하늘 걸으며 바람따라 흔들리는 손, 한껏 짧아진 머리카락 덕에 드러난 미끄러운 목선, 꽤 왜소한 편에 속하는 나조차도 한 손에 감싸안을 수 있을 것 같은 가녀린 어깨.

그것들을 되새기는 순간, 눈은 현실을 바라보고 있지만, 뇌는 기억을 바라보게 된다. 다시금 시간은 빨라지고 나는 그녀에게로 흐른다.


#4

빨라진 시간 덕에 눈을 뜨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 한 일 자로 닫힌 눈꺼풀로 어둠이 찾아들고, 그 어둠이 가로되, "들어야 할 것을 들으렴."

나에 대한 이야기, 그녀에 대한 이야기, 내가 좋아하는 음악, 그녀가 좋아하는 음악,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집, 그녀가 사랑해 마지않는 일본풍 식당, 시시콜콜한 어려움을 털어놓는 나와, 그런 것들에 도저히 흔들리지 않는 그녀가, 답을 찾지 못해 침묵이 잦아들던 나와, 어이없어 하는 그녀의 반응, 취한 그녀의 '보고싶다'는 말과, 그 말에 체온이 2도 쯤 올라가던 나, 

온전한 진심으로 대화하고 싶어하는 그녀와, 그것을 통해 드러날 차이를 두려워하는 나.

시간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수문은 등 뒤로 이미 멀어졌다. 평온한 강물이 자갈들을 품에 안고 흐른다.


#5

앞으로도 많은 문을 거쳐야 한다. 너른 바다에 닿을 때 까지, 나의 시간은 영원하리만큼 늘어졌다가, 종말의 때처럼 줄어들 것이다. 존재하지 않아도 소유할 수 있고, 꼭 소유하지 않아도 존재는 느낄 수 있음을. 나는 바다로 흐르지만 계곡 사이로 쏟아지는 그녀의 기억을 품고, 흐를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마음이 한 곳으로 향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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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떨리는 마음으로 들어선 방 안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쿵쾅대는 마음을 숨기고 태연한 표정을 짓는 것은 가히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눈치채지 못한 채 숨을 크게 내쉬는 사이, 방 안의 공기, 여러 사람들이 들락임을 애써 숨기는 오묘한 방향제 냄새와 락스 냄새가 뒤섞인, 그리하여 깨끗함을 뒤집어 씌운 듯한 파리한 느낌이 가득 밀려오는 이 곳이 편할 수는 없었다.

창문 틈새로 찬 바람이 새어들자 코끝에 미약한 현실감이 밀려왔다. 긴장을 풀기엔 부족했으나 존재를 깨닫기엔 충분했다. 다소 어두운 불빛에 익숙해지고, 잠시 바라볼 수 없었던 그녀의 눈빛을 바라볼 수 있었다.

심연을 담고 있는 그녀의 눈빛을.


#2

피곤함과 싸우며 홍대의 네온 사인으로도 지울 수 없던 밤, 그녀의 눈빛은 태생적으로 모든 것에 무신경할 수 있는 파리함이 담겨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자 그 눈에는 다소 온기가 들어갔으나, 헤어지기 전 노래방에 들어서기 전까진 그다지 썩 바라보기 편한 눈은 아니었다.

그러나 붉고 노랗고 초록빛의 작은 불빛들이 휘몰아치는 작은 노래방안에서, 자우림의 <미안해 널 미안해>를 부르던 그녀의 눈빛은, 따스하지도 차갑지도 않았으나 몽환속에 잠겨있었다. 아마 목소리에 취해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힘있고 깊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 속을 깊이 파고들었고, 오랜만에 느끼는 설레임에 고막이 떨렸다. 설레임이 아니라도 떨렸겠지만.

때론 그 눈이 반짝일때도 있었다. 푸름이 가득 삼켜버린 하늘과 그보다 더 푸르른 바다가 서로 지평선을 등에 맞대고 서 있던, 다만 가끔 하얀 구름 멋쩍은듯 지나가고 바닷바람의 심술이 대지를 습격하던 4월의 동해바다에서, 그녀는 흩날리는 치맛자락과 머리카락을 부여잡느라 바빴다. 가녀린 어깨가 바다로 향할 때 나는 샘솟는 사랑스러움을 삼켜야 했다.

삼키는 대신 담아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렌즈 안으로 들어온, 바다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여름날처럼 반짝였다. 아직 여름은 오지 않았으나, 봄날의 그것과는 다른 반짝임이 가득했다. 본래 사진을 찍기위해선 한 쪽 눈만 감아야하나, 나는 바보처럼 양쪽 눈을 감고 셔터를 눌렀다. 그러는 바람에 정작 사진이 찍히는 순간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으나, 집에 와서 살펴보니 꽤 아름다운 사진이 나왔다. 아름답다 하여도 그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녀를 옆에 두고 태평하게 쳐다볼 수 없는 대체로의 시간에 위안을 주기엔 충분했다.


#3

한편, 전날부터 내내 무겁고 날카로운 말들이 오갔던 때와 침묵이 전화를 가른 후, '무슨 얘기를 하든지 일단 만나서 해야겠지.'라며, 그 즉시 불안함의 미로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을 듯한 목소리가 나를 휘감던 날. 카페에 앉아 플라스틱 컵을 만지는 그녀의 손 끝에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상실감이 묻어나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으나, 그녀는 날 바라보지 않아도 절망을 전했다. 플라스틱 컵은 곧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의 지옥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그런 와중에도 차라리 내가 그녀의 시선을 오롯이 받는 플라스틱 컵이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멍청하기가 도를 넘었다고 할 수 있다.

만화에서 종종, 흑마법에 빠진 주인공의 눈에서 흰자가 사라지며 온통 검은색으로 가득채워질 때가 있는데, 그 때의 그녀의 눈이 그러했다. 내가 절망한 것은, 그녀의 눈빛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그녀의 눈빛을 잃게 한 나의 하늘을 찌르는 바보스러움에 절망했기 때문이었으나, 어둠으로 가득찬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는 것, 아니, 곁눈질로 훔쳐보는 것은 선고를 앞둔 실형이 확정적인 죄수의 심정과 비슷했다.

또다른 눈빛을 볼 때도 있다. 세상의 모든 우울함을 다 끌어다 쓸 듯한 우울함이 사라지고, 무신경함이 가득 채운 눈빛도 사라지고, 약간의 사랑스러움과 미미한 조명이 담긴 눈빛도 지나면, 이윽고 그녀의 눈에는 소녀의 마음이 가득 담긴, 장난기가 모든 자리를 메운 눈이 되고 말았다. 대체로 나를 놀려먹거나 괴롭혀 먹을때 그런 눈빛이 되곤 했다.

실은, 괴롭히는 것을 막거나 거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나는 그녀의 눈빛을 마주하면 얼음을 선언한 놀이처럼 굳어버렸다. 명치 언저리의 깊은 곳에서 살랑살랑, 말랑말랑, 속에서 간지럽히는 듯한 기분에 힘이 주욱 빠지곤 했다. 이렇게 살랑이는 마음이, 그녀와 함께있을 땐 너무나 자주들어서 익숙해질 때도 있으나, 익숙해지기도 전에 그녀가 없는 일상으로 돌아오기에 나는 매번, 만날 때마다 그러할 수 있었다.

퍽 행복한 순간이라 할 수 있겠다.


#4

내가 바라본 눈빛이 그녀의 내면을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바라본 것은 그녀의 눈빛이 아니라, 나의 희망을 담은 나의 눈빛인지도 모른다. 혹은 그녀의 눈빛에 반사된 나의 눈빛이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다른 무언가의 눈빛인지도 모른다. 혹여 그것이 눈이 없는 물체일지라도.

다만 확실한 것은, 나는 그녀의 눈에 혼을 빼앗겼다. 손에 닿으면 나풀대는 머리카락, 가녀리지만 무너질 일 없을 듯한 어깨, 자그맣고 귀여운 손, 뒤에서 끌어안으면 포근하고 안락한 허리, 떨림이 그대로 담겨있는 입술, 그녀의 모든 부분이 나를 뒤흔들지만, 정작 무서운 것은 접촉이 없어도 나의 세계를 순식간에 뒤흔들어 놓는 그녀의 눈빛이다.

눈빛이 없는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어쩌면 색채가 없는 세상이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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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담담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순간순간 파고드는 매서운 감정의 칼날에 베이지 않는 것, 칼날이 들어왔다가 나간지도 모른 채 굳어지고 무뎌진 마음의 벽을 세우는 일은 내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흩날리는 가을 바람에 서늘한 마음이 스산히 피어올라, 덧없는 밤을 지새우곤 했던 때와는 달라져야만 했다.

그러나 기억의 한 귀퉁이를 짖게 물들인 감정의 자욱만큼은 다시 살펴보지 않으면 아니됐다. 나는 표현할 길 없고, 들을 사람 없는 순간의 감정을 무시한 채 글로 엮는 일을 배웠다. 모든게 다 끝나고 나면 보다 담담한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은 채 이야기할 수 있는 냉담함, 나는 그것이 좋았다.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 수 없지만, 아무 얘기나 다 할 수 있는, 편리함으로 위장한 비겁한 태도이겠다.


#2


오랜만에 앉은 지하철 좌석에는 햇빛이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육중한 흔들림은 매번 익숙해지지 않지만, 좌석이 불편했던 이유는 다른데에 있었다. 서늘한 그녀의 목소리는 이어폰에서 귓 속으로 사라지는 노랫소리들을 지우고 자리를 메웠다.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마냥 설레이고 있었을 시간이 어쩌다 이렇게 무거워졌는가. 나는 무슨 말을 할 지 몰라 피어오르는 자책 속에서 허공을 응시했다. 짧지 않은 이동시간이 짧게 느껴진 것은 그래서였으리라.

나는 말 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한 명과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는 것도 어려운데, 여러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피할 수 있으면 무조건 피하려고 했다. 피어나는 감정은 접어둔 채 즐거움이란 포장지로 둘둘 말아가는 헛소리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며 골치 아픈 문제들은 저 멀리 미뤄두는 습관들.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처리해야 할 일이 먼저니까. 

아니, 입 밖으로 꺼내면 마주할 문제들이 두려우니까.

그러나 마주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라 해결의 시작이라는 것은 영원히 모른척할수도 있었다. 그녀와 얘기하기 전까진.


#3


따끔거리는 목과 쏟아지는 잠을 애써 참으며 그녀와 긴 대화를 나눴다. 놀랍게도, 그 시간동안 나는 이동을 하고, 차 표를 끊고, 중간 중간 이런 저런 것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한 번에 한 가지 밖에 못하는 나의 좁은 시야를 생각하면, 대화에 집중할 수 있던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마저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어쨌든 또다른 경험이었다. 출발할 때의 시간이 설레임 대신 두려움으로 채워졌다면, 돌아올 때의 시간은 아쉬움 대신 차분함으로 채워졌다. 차분하게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그녀의 이야기를 곱씹는 것은 다소 쓰라리지만 바람직한 일이다. 바람직한 일, 바람직하지 못한 채 미루고, 회피하고, 도망치며 지내온 관습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쉽지 않지만, 바람직한 일을 회피하지 않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모든 지난 날들을 정리할때마다 내 글에는 후회가 묻어났다. 그 때 그 발표를, 그 때 그 주장을, 그때 그 말을 했더라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더라도 기왕이면 하는 편이 나았다. 또 한편으론 다른 후회도 있었다. 그 때 그런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두 가지 후회를 절충해, 아무말대잔치라는 기이한 해결방법을 도출했으니, 이 글이 정리가 안되어있는 것과 비슷한 것이겠다.


#4


나는 그녀가 온전하기를 바랬다. 온전한 마음으로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길. 내가 간과했던 것은, 내가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좋은 얘기'만 하길 바랬다. 걱정되고, 슬프고, 우울한 것들은 다 감추고, 심지어 냉기 가득한 부검실 의자에 앉아있을 때 조차 내 손가락은 시덥잖은 이야기로 덮길 바랬다. 그 모든 것들을 모조리 퉁쳐서 "미안해"로 전하는 법만 알았으니, 상대가 궁예라도 알아듣기 힘들긴 하겠다. 하물며 그녀라면야.

슬픔에 가득찬 그녀의 표정마저도 아름다워, 타이밍 안 맞게도 사랑을 전하는 말을 하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게 하는, 그녀에게 그것을 바라기엔 내가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다.

쉽지 않은 일이기에 부담스럽지만, 일견 즐겁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한심한 태도일까. 그러나 꿈결같은 시간에도 삶은 여전한 법, 살아가기 위해 그래했노라라는 과거를 통한 회피는 접고, 살아갈 일을 꾸는 것도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랑한다는 것과 살아간다는 것은 미묘하게 어감이 닮았다. 코 끝에 남은 그녀의 향기가 사랑하며 살아가는 법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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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우린 멀리 있어서 다행이야. 나는 최선을 다해서 만나러 갈 수 있잖아."

그녀는 내게,

"가까이 있으면 넌, 익숙해진다는 것에 익숙해지려나."

글자 끝에 적힌 마침표가 나를 땅 속으로 이끌었다.



#2

그녀와 나는 둘 다 '영원'을 믿지 않는다. 

그녀에게 어떤 사연과 과거의 이야기가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제행무상, 제법무아'라는 글귀를 매일 보아왔다. 사물의 겉과 속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웠던 어린 날부터 '모든 것이 변한다'는 명제는 쉬이 받아들였다. 내 눈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었다. 억겁의 시간 속에서 존재하는 우주도 들여다보면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하물며 작디작은 인간 내부에서 일어나는 호르몬의 장난질따위, 영원할리 없었다. 아니, 호르몬의 장난따위가 영원할 수 있다면 세상은 진작에 사랑으로 충만했어야 했다.

그것까진 알겠는데,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라는 가르침과는 반대의 길을 걸었다. 변한다는 것을 알고있기에 다른 이들보다 더 빠르게 상실을 두려워했다. 조금이라도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기척이 느껴질때, 밤은 스스로 그 몸을 주욱 늘려 영원할 것 같은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그 안에 갇혀 수십번 반복되는 상실의 반복. 

나는 집착할 수 밖에 없었다. 정답지를 베껴쓰고도 틀려버리는 주관식 수학 문제지같았다, 집착하지 않고, 초연한 자세로 모든 사랑하는 것들을 대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상은 그 언저리에서 멤돌았지만 마음 속은 집착이 전전긍긍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영원불멸하지 않다는 것, 언젠가는 상실한다는 것. 

나는 그것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3

그런가하면, 그녀가 '영원'을 대하는 자세는 나와는 달랐다. 내가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도 어떻게든 가지려 전전긍긍했다면, 그녀는 애초에 가지려하지 않은 것 같다. 영원하지 않을 것은 가지지도 않는다. 얼마나 편리하고 꼿꼿한 자세인가. 그녀에게 호르몬의 장난질인지 진정한 마음의 씨앗인지 아무튼, 알 수 없는 발칙한 마음을 품게 된 수십가지(세기 나름에 따라 수백, 수천가지) 이유들 중 꽤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삶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그래서, 미래의 일을 논할 때도 달랐다.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염두하며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해왔다면, 그녀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현재에 제거해버리는 사람이었다. "안 될 일은 아예 시작도 하지 않는다." 내가 죽은 뒤 해부실 베드에 올라 나노 단위로 조각조각내서 정밀 관측을 한다 해도, 내게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태도였다. 어영부영 시작한 채 어영부영 마무리하는 것이 내가 쌓아온 '역사'였으니.

그녀의 맞춤표가 내게 두려움을 주었던 까닭도 그녀와 나의 차이에서 피어오른 것일테다. "그대에게는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어요." 나는 불가능한 희망을 내비쳤고, 그 말을 백지에 새기면 뒷면에 '평소의 나는 볼품없으니까, 당신이 실망할지도 몰라요.' 라고 써져있다는 사실이 들키지 않길 바라며.

명백한 오판이었다. 때때로 본질을 꿰뚫는 그녀의 깊은 눈동자를 깊이 담았으면서, 그녀가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랬다는 것은. 며칠이 지나고, 어떤 계기로 인해 그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넌, 내게서 절대 실망을 느끼지 않을 거라 확신해?" 질문 속에 답이 있었고, 나는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영원하지 않은, 영원할 수 없는. 글자들이 머리속에서 춤을 추며, 상실이라는 어머니가 불안과 두려움이란 쌍둥이를 낳고 있었다.



#4

그러나, 나는 사랑하기에도 벅차다. 사랑스러운 그녀를 사랑하기에도 내 머리는 이미 벅차다. 지혜의 방을 일찍 잃은 나의 머릿속에는, 불안과 두려움이란 악동들이 헤집고 다니기에 내 줄 빈 방이 없다.

어째서 이런 결론을 내리게 됐는지는 미스테리다.

"좋은 모습만 보일 수 없다면, 차라리 좋은 사람이 되어보이겠어요."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좋아져야 하는 것은 좋아진 채로, 그녀를 떳떳하게 좋아하고 싶다고.

아니, 생각해보면 미스테리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어느순간부터 나는 그녀를 떠올릴때면, 손 끝에 닿았던 어깨의 감촉과, 내 눈 속에 가득 담긴 그녀의 미소와, 귓바퀴를 멤도는 마이너음을 노래하는 목소리와, 흔적처럼 잔향으로 남은 그녀의 향기와, 자기 전에 몇 번이고 다시 읽었던 그녀의 글과, 또 들뜬 맘으로 잠을 잘 수 있게 만들던 그녀와의 대화들, 심지어 나를 두렵게 하던 그녀의 낮고 차가운 단어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각각의 존재로, 또 하나의 존재로, 내게 쏟아져내리고 있었다.

구원은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보며 희열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오히려 스스로를 다잡고 채찍질하게 했다. 놀랄 일이다. 그녀가 흘리듯 뿌린 말들은, 나의 내면에서 해체와 조립을 반복했고, 나는 항상 외면해왔던 길을 걸어보자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5

"모든 것은 영원할 수 없다. 그러니 집착하지 말라"

나는, 지금껏 그래왔듯 집착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라는 존재를 더 품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잠시라도 손아귀를 벗어난다면 두려움에 떨것이다. 어쩔 수 없다. 소인배가 어느날 키가 쑥쑥자라 대인배의 풍모를 뽐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최선의 모습을 보이고 싶다는 알량한 욕심은 희미해져간다. 평소의 모습과 최선의 모습을 하나로 만들어, 미안해하지 않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용기를 가지고 패배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제 출발인 수준이라 뭐 대단한 듯 말하기엔 멋쩍지만., 이렇게 말해야겠다.

사랑하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진 사람과, 사랑을 느끼기에 아득히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두고있으니.

"조금씩, 나아지겠어요. 나는 영원하지 않으니까요."

타이틀 곡만큼 10번트랙이 좋은 사람, 그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내가 그녀를 그런 존재로 느끼고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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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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