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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을 묻고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릴 줄 모르던 나는, 저들에게 우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나는 사소한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어떻게든 답을 스스로 찾아내려는 끈질긴 시도를 도외시한 채, 답지가 나오는 챕터에 손가락을 넣고 문제와 답지의 페이지를 와리가리하며 열심히 풀이를 외웠다. 그렇게 숙제는 대충 떼웠는데, 이름이 불러져 칠판에 풀이를 써갈 때엔 영락없이 답지를 봤다는 사실이 대뽀록,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저지른 학생으로 낙인받고 모두의 비웃음을 사곤 했다. 그 끝은 항상 나머지 공부로 귀결되곤 했으니, 모두가 떠난 교실, 창문을 파고드는 석양의 잔인한 조롱이 나를 비웃곤 했다. 

벌써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일이나, 인간이 대게 그렇듯 습관이란건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에도 늘 습관만이 자리하니, '습관이란 게 무서운거더군'이라 노래하던 롤러코스터의 목소리가 놀림처럼 들리는 것은 오로지 자격지심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애초부터 글러먹었기 때문이라며 우격다짐하고 있다.





#2


시간은 흐르고 섬도 매년 모습이 변한다. 한 때 찰랑이는 단발을 휘날리며 눈가를 찌르는 머리칼이 성가셔 "이까짓 머리카락, 확 잘라 버릴까" 고민하던 한 청년이, 그러나 사실은 그닥 멋잇게 보이지도 않지만 나름의 가오를 유지하기 위해 끝끝내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지만, 어느세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버려 빼곡히 덮여있던 머리카락이 수줍은 살색을 드러내며 훤해지듯, 섬도 매년 억새의 자리를 잃고 앙상한 대지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현상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행위이다.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출현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며, 어쩌면 집단을 이루고 농사지를 짓던 것보다 더 오래된 일이라는 근거도 얼핏 눈에 띈다. 대체로 신의 행위라 여겨졌던 자연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늠하곤 하던 닝겐의 모습은, 알파고 성님이 곧 세계를 지배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이 때, 한쪽으로는 알파고에 충성충성 댓글을 쓰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역시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고 있다. 어쩌면, 한 3백년 쯤 지난 뒤 지금의 이 시기를 인공지능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지칭할 지도 모른다.

만약 섬의 변화를 통해 나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풍부했던 감성과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듯한 넉넉한 품을 가진 한 소년이 현대 사회의 쓰라림과 이별의 상처 끝에 점차 헐벗은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나 할 수 있고, 또다른 해석으로는 곧 탈모인의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르겠다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애타게 유전자를 추적한 결과로는 탈모인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술에 취한 가족분들 중 한 분이 선조 중에 대머리, 그것도 대머리 동아리가 있다면 회장을 넘어 고문급의 명성을 지닐 수 있을 만큼의 대머리였다는 기절초풍할 사실을 살짝 흘린 것도 같으나, 기분탓이라 흘러넘겼기에 그 사소한 말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좌우지간, 모든 것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말씀 되시겠다. 아, 딱 하나, 눈치없이 늘어나는 몹쓸 뱃살 빼고.




#3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단다. 사람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초등학교 시절 칠판에 학습주제를 적어놓다가 갑자기 일장연설을 하시던 어떤 쌤의 말씀에서 배웠듯, 나는 내 주제를 잘 아는 사람이므로 시인은 커녕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기에도 마음 한 켠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난데없지만 면목동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을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면목없음과, 맹자가 다시 태어나 인간의 모든 감정은 사실 수오지심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의 사상을 재편할 만큼의 부끄러움이 있다. 하지만 윤동주도 맹자도 면목동 사람들도 다 닝겐이듯, 나 역시 잎새 대신 억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괴로운 나머지 괴력몬이 되어 이 드넓은 억새밭을 다 갈아 엎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녀를 괴롭혔던 죄, 여기에서 받는 것인가.


메말라 가는 것 중에서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헐레벌떡 스스로 다 벗어제끼며 도망가는 것들 중에 선두를 이루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두번째가 글솜씨이다. 항의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글솜씨는 단 한번도 공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만약 글솜씨를 자격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낙방에 낙방을 거듭해 한 60년 쯤 지나면 '최고령 응시자'로 신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게임이나 즐길 줄 아는 친구들중에서 좀 쓰는 편에 속했던, 그러나 백일장만 나가면 번번히 지도 선생의 '염세적이다.', '우울하다.'는 평을 받고 억지로 수정,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곤 주최측에게서 표절 의심을 받곤 하던 글솜씨로는 아무래도 세상에 이름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꼭 세상에 이름을 낼 만한 솜씨를 지닌 사람만 글을 쓰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니체와 모짜르트는 인류가 절멸할 때까지도 이름을 남길 만한 업적을 쌓았다지만, 그 둘에 미치지 못한 2인자들의 작품 따위 아무래도 알 게 뭐냐라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2인자의 자리까지도 미치지 못하지만, 모든 인생엔 나름의 지옥이 있는 법이며 그래서 또 아름답기도 한 법이다. 

아아, 완연한 아름다움을 피우고 싶어라! 묵직한 침묵 속에서 강려크한 절규를 내뱉으니, 저 비루한 억새들, 날 두고 이래라 저래라 가르칠 때는 언제고 죄다 쫄아서 몸을 뉘인다. 하늘거리며 풀썩 눕는 꼴이 꼭 격렬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하는 고양이, 혹은 그런 내 모습 같다. 하늘거리며 아무 것도 하기 싫지만, 그러나 하늘거릴 수 밖에 없는 세파에 어리둥절,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것 마저 꼭 닮았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내가 멍청할 때엔 현명하고, 내가 현명해지는 척 할 때엔 멍청해지는 것이더냐. 스핑크스 앞에서도 툭툭 묘답을 내뱉을 것만 같던 지난 날의 녀석들은 자식 농사를 망쳤는지, 아무런 답이 없다.

답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답이 없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다 맞는 답을 내어 답답해지는 것도, 뭐든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괘씸한 녀석들이로고.





#4


사건은 항상 생활의 불편을 불러온다. 편안한 생활이란 건 무사안일한 일과를 전제로 놓고 있기에, 사건이 성격이 즐거움이든 우울함이든 간에 편안한 생활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아주 높은 비율로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썩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나, 어찌하여 닝겐은 이 모양 이 꼴로 진화 되어온 것인지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이브 유골을 마주해 욕을 퍼붓고 싶다. 도대체, 뭐 때문에, 어찌하여, 닝겐은 기쁨에는 그다지도 빠르게 시무룩해지거늘, 우울함의 총량은 감정의 골짜기에 쌓이고 쌓여 도저히 손도 못 댈 지경에 이르러서도, 당최 익숙해지지도 무감각해지지도 식지도 않는 것일쏘냐! 이브 할머니께선 길 가다 뺨 맞은 것처럼 어처구니 없어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할머니 대로 나름의 조상님들에게 항의하시면 될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자고로 남 탓이 제일이다.

고로, 내가 요즘에 조악하고, 한심하고, 엉망이며, 낙서같고, 비루하며, 고루하고, 졸렬하고, 낙서 수준의 글들만 써 제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 탓이라는 훌륭한 결론에 도달했다. 억새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검을 꺼낸다. 으음, 만사가 편안해졌다. 삼라만상에 피어나는 찰나의 감정들이란 모조리 호로몬의 작용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해버리면, 혹은, 우주구급, 혹은 육도윤회와 일만 번 전의 전생 을 들고 나오면 이 생에 피어나는 괴로움 따위 모조리 한 조각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그 드넓은 국부 은하군조차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한 조각 줄기에 지나지 않으며,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은 아예 관측가능한 영역을 홀라당 벗어나 버리지 않던가.

그렇게 시야를 무제한으로 넓혀보지만, 불변하는 사실이 단 하나 있다. 나는 바늘로 살짝 찔러도 일본도를 맞은 조선의 갑사처럼 비통한 마음을 못 이겨 떼굴떼굴 그르는 강직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런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로 인해,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상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어느 중력에 메여야 할 지 알지 못한 채,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언제 또다시 태양을 찾아 뵐 수 있을런지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는, 기약없이 떠나다가 어느 단단한 행성에 부딪히거나, 혹은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태양풍에게 빼앗겨 소멸할지 모르는 혜성처럼 되버린 삶이여, 아아, 훌륭하다. 마땅한 단골집을 잃어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요즈음의 나이므로,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에 다소간의 에로도 겪지 못하고 애로를 겪는 것을 감싸주어야 한다. 답을 내지 못한다 하여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다. 

양심이 있는 존재라면 피어오르는 한심함 따위, 만인에 대해 투쟁하듯 뿌리채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5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채 뽑는다 하여도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안다. 달라지지 않았기에 머무르고만 있단 것도 안다. 놓친 까닭엔 다 이유가 있다. 걷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해 머무르지 있는 것도 안다. 안다. 다 안다. 알기만 하고 모르기만 하니 매년 이곳에 되돌아 온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들이라곤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것을 해내버리는 책 속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것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필부와 영웅을 가르는 것은 한 끗 차이지만, 각자의 앎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나 아는 것만으로는 답을 낼 수도, 구할 자격도 없었다. 녀석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도 알았다. 알았으나, 나는 항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치에, 논리에 모두 맞는 것이라고 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컨슈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인을 비판할 처지가 되지 못함을 선택했다.

올해의 섬은, 그 낯빛이 유난히 흙색이었다. 다시금 꿈을 묻다가, 꿈을 묻었다. 


돌아오는 길은 평온한 일상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마음이었다. 허전한 곳은 다시금 떡볶이로 채워야 겠다. 당장은 찾지 못한 단골이 될 집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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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이브날을 떠올리며



#1


따스한 겨울이란 것은 참 지랄 같은 일이다. 싫다는 것은 아니고, 아니, 좋다는 것에 가깝지만, 뭔가 '야레야레'한 뉘앙스와 함께 "이래서 되겠어!" 라는, 선비의 호통을 빌려와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모름지기 겨울은 추워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기상예보의 내일부터 추워진다는 말은 여전히 두렵다.



#2


자전거로 10분이면 닿는 곳이지만, 비내섬을 간 것은 1년에 끽해야 한 두번이다. 대부분은 그냥 지나치며 관람했을 뿐, 걷기도 불편하고 바람도 많이 부는 그 섬에 들어가 쓸데없는 감상을 만드는 것 처럼 잉여같은 짓은 없을 것이다. 잉여올림피아드에 나간다면 순위권에 들 자신이 있을 만큼, 잉여짓에 관해서는 제법 쌓아온 업적이 많다고 자부하는 바, 나는 시간이 붕 떴을 때 잉여짓을 하지 못하거나 할 만한 잉여짓을 떠올리지 못하면 지루함을 넘어 급기야 우울해지기 까지 하는 것이다.

비내섬을 가는 잉여짓은, 수 많은 잉여짓 리스트에서도 꽤 저 아래편, 우선순위가 무척이나 낮은 행위다.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자주 보면 지겨운 법이라는 변명과 함께.





#3


올 해, 아니 벌써 작년이 되었군. 아무튼 그 때의 비내섬은 새로운 경험요소가 몇 가지 있었다. 새로운 코스와 새로운 사람, 새로운 사진. 추석 즈음의 황금빛 논 처럼, 늘 넘실거리고 아늑했던 억새밭은 가을과 겨울의 어중간한 시간에 내팽개져진 채 초라하고 고통스럽게 휘어져 있었다.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던 것도, 드라마 촬영 스텝의 제지로 인해 원래 가던 코스로 가지 못하고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코스로 갈 수 밖에 없던 일 덕분이다. 이 쪽으로는 나도 처음 오는 것이었다. 이리 저리 따져도 들어갈 수 없다는 스텝의 답변에 나는 창문을 닫고 한참 후진을 하며, 일부러 들으라는 듯 모기 목소리로 욕을 했지만, 조금은 고마운 기분도 있다. 아주 조금.


차와 사람들이 꾹꾹 눌러놔서 다니기도 용이하고 억새밭도 정리되어 있는 저 쪽 코스에 반해, 이쪽은 좀 더 날 것의 기운이 물씬 풍겨왔다. 걸을 때 마다 발을 휘감는, 덜 잘려진 억새 나부랭이들이 슬슬 짜증나게 했지만, 그 거칠고 앙상한 모습에 일말의 동정심을 들었다, 어쩐지 수 년 전의 내 모습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과거에 대한 향수를 그윽하게 담아, 꾸역꾸역 즈려밟아 주었다. 피어오르는 과거를 목격하는 일은 이제 전혀 반갑지 않다.


강물을 보고싶다는 동행인의 요청에 오게 된 것이었지만, 겸사 겸사 근사한 억새밭을 보여주고도 싶었다. 그러나 근사한 억새밭은 커녕 이 비루함을 넘어 비참해보이기 까지 하는 억새와, 풍요로움을 잃어버린 섬의 풍광은, 어디서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중2병 사진이 나오게 되었다. 나는 중2병과는 다른, 조선 선비의 기풍을 이은 신사라 자부하지만, 찍히는 사진을 보자니 그런 나 역시 고개를 저을만큼 감당할 수 없는 사진이 많았다. 하드에 영구히 보관하고 임종 후 보여주던가 해야겠다. "제사를 똑바로 안 지내면, 니네 자식들 커서 이렇게 된다" 라는 유서와 함께. 줄 수 있는 유산은 없지만 제사와 차례는 꼬박 꼬박 받아내고야 말겠다는 조상님들의 지혜를 잇는 일은 꽤나 보람 찰 것이다. 

후손의 생성 가능성에 대한 생물학적 및 사회학적 고찰과 반성에 대한 지적은 사양하겠다.


동행인은, 내게 있어 지난 몇 달간 매일 본 야동처럼 감흥이 없게 된 그 강물을 보고 뭔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곰곰히 생각하는 것은 사실 그냥 멍 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학창시절, 틈만 나면 창 밖을 바라보는 나를 들먹이며 선생님들이 "ㅁㅁ는 생각이 깊은가봐" 라며 뒷담화를 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개뿔, 그냥 대체로 여자 생각을 했을 뿐이다. 물론 이것은 불순한 사상으로 그득그득 채워져 있는 나로 한정할 이야기이고, 동행인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했을 것이다. 답답한 사람이 답답한 환경에 갇혀 있었으니, 답답했겠지.

아무튼 강물이고 억새밭이고 섬이고, 모두 유난히 고요한 날이 었다.



#4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방황하는 섬의 모양새를 계속 보자니, 썩 좋은 감상에 젖을 수는 없었다. 차라리 눈이라도 쌓여 있으면 더 그럴 듯 하겠건만, 내 눈이 보고 싶어하는 것을 억지로라도 이 섬에 조성하고 싶었다. 영원히 사랑할 수 있을 것만 같던 이 섬 역시도, 나의 사랑을 시험하는 겉모습으로 나를 맞았으니, 어릴 때 내게 들려준 억새들의 약속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언제든 내게 오면 안아줄게"라는 속삭임은 가을-겨울 잠이라도 자는 걸까. 비내섬의 사정이야 내 알 바 아니고, 나는 지금 갈비뼈가 으스러지듯 뒤에서 안아주던 그 포근함이 필요했다. 필요했다고! 

그 날들에 나를 충만하게 채워주었던 억새들도, 철새들도, 그 때의 그녀도, 모두 어디로 간 걸까.



가을과 겨울 사이에서 방황하는 나의 모양새를 계속 보자니, 썩 좋은 감상에 젖을 수는 없었다. 내 마음도, 내 각오도, 그 때의 그 감정도, 모두 어디로 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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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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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의 어느날을 떠올리며, 2015. 9. 23. 씀



#1


떡볶이를 사러 나갔다.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홍야홍야 걷던 나부랭이의 시선 속으로 끝이 메마르는 나뭇잎을 보았다. 

2년간이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집 코 앞에서 거주하는 생물체의 이름이 무엇인지 당최 알지 못한다. 대파를 사놓으면 금세 대가라가 노랗게 물들듯 그 나뭇잎의 손가락도 물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가을이 도래하고 있다.


#2


가을이란 놈은 예리하기가 발군이라,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신사된 도리를 잃지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삼라만상이 지어내는 혼돈에 휩쓸리지 않는 대자대비한 이내 가슴속에 한줄기 생채기를 내곤 하였다. 밤이면 가로등에 등을 내주어 창문을 뒤덮던 은행나무의 그림자가 조금씩 탈락되어 가늘어 가는 것을 보기에 차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떠나간 옛사랑과 쓰라린 감정의 잔해들이 모두 담겨있는 뇌 속 어딘가의 쓰레기통을 뒤져 무엇하랴.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가을은 무사의 인내를 시험하듯 단련되어 지나갔고, 그러한 계절의 반복이 벌써 수십차례. 사나이의 길에는 좌우지간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 도착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내가 안시성같은 견고함을 가진 인내심과 대지를 품을듯한 그릇을 가진 대범함의 소유자라 할 지라도 전지구적 환경변화에 대해서늘 한낱 무지몽매한 인간일 따름이어니, 가을이 두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3


아주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지만, 버티기 쉽지 않아질 때에는 고향의 빛을 찾아 떠나기도 했었다. 너른 강이 휘감고 도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 섬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억새가 무리를 짓고 우두커니 서들있다. 우두커니만 있지않고 어쩌다 요란한 가을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무당이 굿 판 벌이듯 좌우로 요동치기도 하나, 그것이 꼭 나의 내면이 투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밝혀두고 싶다. 부동하는 마음에 일절의 흔들림이란 없다. 갈대같은 것은 신사의 사전에는 없다. 갈대같은 마음을 지닌 자들이란 모름지기 거렁뱅이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도 좋다.

다만 좌우로 펼쳐진 억새들 사이로 내놓은 울퉁불퉁한 시골길은 썩 마음에 차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제법 호쾌한듯 곧게 뻗어 미약한 안경잡이의 눈에도 일말의 광활함의 선사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조약돌 짱돌 웅덩이 잡초 온갖 무지랭이들이 집합하여 행자의 도보수행을 방해한다. 영 걸리적 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불만이로다.

호호탕탕한 걸음걸이에 부동부혼의 마음가짐으로 길 끝 커브를 돌면 찰랑이는 물결을 보고자 했던 나의 애시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아귀도나 다름없는 시골길은 꼭 나의 발목을 잡곤 했다. 여기저기 주제도 모르고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해 걷다보면 술 취한 듯 보행은 갈지 자. 요동평원을 달리던 고구려의 장수들이 그러했듯 그윽한 눈길로 저 먼 곳을 응시해야할 나의 눈은 쳐박혀진 고개 덕에 돌부리를 파악하기에 급급하다. 딱한 노릇이다.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지형지물에 고전을 치르고 있는 덕에 부득불 초라해진 마음이 불쑥 참호 밖으로 고개를 든다. 녀석은 철모를 부여잡고 전황을 살핀다. 그러면 또 녀석을 반기듯 억새들이 미친놈 빤스 휘날리듯 요동치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다. 녀석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느끼고 평정심으로 무장한 내면의 전선을 돌아 후방에서 게릴라 공습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윽고 반절쯤 걸었을 때에는 엉망진창의 불바다가 펼쳐지는 것이다. 왜 또 이곳에 와버렸나 하는 후회를 해야 할 뇌 속 작전사령부는 융단폭격에 와해되어 버렸고, 그나마 우직한 두 다리만 하염없이 걷는다. 걸을 뿐이다. 그 사이에 동네방네 울음소리가 터진다. 들어줄 이 하나 없건만 가가소소 뭐가 그리 원통한 것이 많은지, 초라한 마음이 메뚜기떼 처럼 쓸고 간 자리에는 웃음 한 톨 남아나는 것이 없다 하겠다.

한바탕 요란한 곡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하여 저물어 가는 태양이 봉긋 솟은 뒷산마루에서 노도하며 내리쬔다. 태양의 엄중한 꾸지람은 내 뒤통수를 한번 치고 앞으로 좀 더 날아가, 찰랑이기 시작한다. 때론 반쪽이나고, 다시 하나가 되어, 찰랑거린다.

이 때는 이미 곡소리는 멈췄지만 다들 널부러져 어쩔 줄을 모른다. 태양의 준엄함조차도 공허함에게 빨려들어간다. 다만 찰랑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모든 이들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샛노란 하늘과 그 아래 샛노랗지도 않고 또 검지도 않는 찰랑이는 것들을. 그것은 세계로 쏟아져 불바다를 지우고, 꽉 막혔던 것들을 치워버려 밖으로 통하게 한다. 찝찝했던 기운은 날아가고 새로운 공기가 드나든다. 그제서야 널부러져 있던 이들이 찢어졌던 벽을 대어 붙이고, 부서졌던 문을 고쳐세우는 것이다.

비록 어설픈 티도 나고, 옆 문짝과 색깔도 다르지만 좌우지간 수리를 끝마치면 몸을 돌린다. 찰랑이는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가고, 던져두었던 찌꺼기가 팔당댐인지 서울인지 서해인지 아무튼 어딘가로 흘러가는 소리도 멀어지면 별안간 돌아오는 길은 떡볶이를 사러 나갈 때 처럼 홍야홍야 걷게 된다. 돌부리가 다 무어냐, 사내의 길에는 직진만 있다. 제법 날카롭게 솟은 돌부리조차 즈려밟아주거나 요로코롬 피해가는 협상가의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을은 그렇게 스며들었다가 떠나는 것이다.


#4


관찰과 분석을 모든 일에 앞서서 시작하는 나의 진중한 습성을 통해 관조하였을 때, 나는 손 끝이 바삭해지는 나뭇잎에서 치킨이 떠올랐고, 치킨에서 노란색의 석양빛이 떠올랐으며, 석양을 생각하니 그 촌스런 이름을 가진 섬이 떠올랐다. 이러는 꼬라지를 보니 올 해 가을은 역사에 연도를 새길만큼이나 지독할 것이 분명하다. 상처에 빨간약을 바를때만큼이나 쓰라릴 것임을 확신한다.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려보자. 계절도, 생채기도.

떠나기 좋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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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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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의 어느날을 떠올리며.



#1


휘몰아 치는 바람을 타고 자전거를 끌었다. 끌었다기 보단 그저 뱀이 휘감듯이 자전거에 몸을 휘감고 끌려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가카의 은덕이 내려앉고 있는 그 강을 응하시며.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를 0이라 하고, 한 걸음을 내 딛는 것을 1 이라 친다면, 나는 0과 1 사이에서 와리가리를 반복하는 소수점이었다. 머릿 속에선 2와 3을 그리고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몸은 어느새 0에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고등유민'이 아닌 '고등폐인'이 되어가는 것을 목격할 때 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대오각성하여 시작한 것이 고작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슬슬 추워지는 시점이었으니, 참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라 하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잠깐 고민해보았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발을 차는 것 조차 귀찮아하는 아기가 불현듯 떠올라 이내 지워버렸다. 저 귀여운 아기가 나 일리는 없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보이니까.



#2


뭐랄까. 좋아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지난 몇 년의 경험으로 충분히 체득했음에도 불구,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합작품인 나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따위의, 세기에 남을 변명을 고대로 답습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보다 못해 나선 일가 친척의 도움이라고는 오히려 나를 퇴보하는 길이었다.

'지나고 보면 다 거쳐야 할 과정이었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개뿔. 그냥 한 걸음이 필요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방법을 아주 조금이나마 배웠어도, 아니, 단 돈 200만원만 손에 쥐어줬어도 꽤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답답함과 한탄의 잔소리에도(당연한 이야기지만, 맞는 잔소리야말로 최악의 잔소리다. 팩트폭행이니까)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합작품인 내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장구한 게임 세계에서 구축한 인생플랜을 냅다 포기할 깜냥이 될 수는 없었다. 뭔가 가오가 상하기도 했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는 말과 어딘가 비스무리한 생각이었던 것도 같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역사서가 나오면, 한 페이지 쯤 기록될 법한, 정신나간 생각이었던 것이다.

웬만한 헛짓거리에도 쉬이 멘탈을 놓지 않는 나지만, 그런 내게도 섬세한 하트가 있고, 그 섬세한 하트 가운데에서도 가장 섬세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앎과 현실의 괴리"라는 몹쓸 부분이었다. 진작부터 두뇌 커맨드 센터는 '세상 최고의 쓰레기'가 되려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 섬세한 하트에서도 가장 섬세한 부분을 암 조직으로 규정, 도려내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내딛기 위해선 내딛을 준비를 해야함을, 내딛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포기하는 바가 있어야 함을,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잠깐의 희생임을. 그런데 왜 안 움직였는지, 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래서 밤새 구직사이트만 대뇌망상 속을 헤엄치며 이리 재고 저리 쟀는지.

그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 하겠다.



#3


그러나 이렇게 섬에 나가서 찬 바람을 맞고, 익숙한 그 갈대들이 거대한 쓰레기가 왔음을 인지하고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회피의 몸부림을 칠 때 쯤이면 그 미스터리함도 풀리곤 했다. 그냥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졸라 귀찮았고.

그건 그렇더라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있다.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오랜 충청도 생활로 인해 충청도의 향토적 풍습이 익히 몸에 베어들었지만(내고장을 내가 욕하는 거니 지역비하라고 비난하지 말지어다), 그래도 한번쯤 솔직해지자면, 나는 단지 한 달의 개고생이 두려웠다. 그것만 견뎌내면 훨씬 인생이 쉬웠을 텐데.

섬을 돌다 보면 위와 같은, 당시로썬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결론을 도출하곤 새로운 마음으로 집에 복귀해곤 했는데, 일제의 암살을 피해 고종이 옮겨다니며 생활한 방 처럼 이중 문 구조로 되어있는 나의 스윗-헬-룸에 도착하면, 딸깍-하고 뇌 어딘가의 스위치가 켜지고 기껏 찬바람을 마시며, 굉장히 싫어하는 칼로리 소모와 함께 도출한 그 결론들이 발랄하게 증발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뫼비우스의 띄가 무엇인지 차츰 느끼게 되었던 시절이다.



#4


모든게 지나고 난 지금, 대체로 후회스럽고 또 후회스러워야 마땅하지만, 일견 후회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조합체인 내가 가끔씩 다시 0으로 수렴하려 할 때, 또다른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이 사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쪽으로 가지마..."는 희미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 비스무리한 상상과 함께.

어쩌다 가끔 그 때의 나와 같은 지경에서 옴짝달싹하는 친구 혹은 후배(사실 친구도 후배도 없으니 거진 남이나 다름 없다)를 발견하곤, 주제가 태산을 뛰어 넘게도 "일단 저질러!"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그 때의 나의 경험을 잠시 들려주며.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를 비웃는 소리가 또 들리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도 나는 못 저지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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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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