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의 어느날을 떠올리며.



#1


휘몰아 치는 바람을 타고 자전거를 끌었다. 끌었다기 보단 그저 뱀이 휘감듯이 자전거에 몸을 휘감고 끌려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가카의 은덕이 내려앉고 있는 그 강을 응하시며. 분하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를 0이라 하고, 한 걸음을 내 딛는 것을 1 이라 친다면, 나는 0과 1 사이에서 와리가리를 반복하는 소수점이었다. 머릿 속에선 2와 3을 그리고 있었지만 자고 일어나면 몸은 어느새 0에 수렴하고 있는 것이다. 혼미해진 정신을 부여잡고 '고등유민'이 아닌 '고등폐인'이 되어가는 것을 목격할 때 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대오각성하여 시작한 것이 고작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다. 슬슬 추워지는 시점이었으니, 참 어처구니 없는 선택이라 하겠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를 잠깐 고민해보았지만, 엄마 뱃속에서부터 발을 차는 것 조차 귀찮아하는 아기가 불현듯 떠올라 이내 지워버렸다. 저 귀여운 아기가 나 일리는 없는 것이다. 게으르다는 것 외엔 공통점이 하나도 없어보이니까.



#2


뭐랄까. 좋아하는 것과 해야하는 것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세상이 녹록치 않다는 것은 지난 몇 년의 경험으로 충분히 체득했음에도 불구,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합작품인 나는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야" 따위의, 세기에 남을 변명을 고대로 답습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보다 못해 나선 일가 친척의 도움이라고는 오히려 나를 퇴보하는 길이었다.

'지나고 보면 다 거쳐야 할 과정이었어'라는 말을 듣곤 하지만, 개뿔. 그냥 한 걸음이 필요했을 뿐이다.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방법을 아주 조금이나마 배웠어도, 아니, 단 돈 200만원만 손에 쥐어줬어도 꽤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답답함과 한탄의 잔소리에도(당연한 이야기지만, 맞는 잔소리야말로 최악의 잔소리다. 팩트폭행이니까)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합작품인 내가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장구한 게임 세계에서 구축한 인생플랜을 냅다 포기할 깜냥이 될 수는 없었다. 뭔가 가오가 상하기도 했고.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는 말과 어딘가 비스무리한 생각이었던 것도 같다.

세상에서 제일 쓸데없는 것들에 대한 역사서가 나오면, 한 페이지 쯤 기록될 법한, 정신나간 생각이었던 것이다.

웬만한 헛짓거리에도 쉬이 멘탈을 놓지 않는 나지만, 그런 내게도 섬세한 하트가 있고, 그 섬세한 하트 가운데에서도 가장 섬세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앎과 현실의 괴리"라는 몹쓸 부분이었다. 진작부터 두뇌 커맨드 센터는 '세상 최고의 쓰레기'가 되려는 중장기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있어 섬세한 하트에서도 가장 섬세한 부분을 암 조직으로 규정, 도려내고 싶어했다.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답을 알고 있었다. 내딛기 위해선 내딛을 준비를 해야함을, 내딛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는 분명히 포기하는 바가 있어야 함을, 그것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잠깐의 희생임을. 그런데 왜 안 움직였는지, 왜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고, 그래서 밤새 구직사이트만 대뇌망상 속을 헤엄치며 이리 재고 저리 쟀는지.

그것은 지금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라 하겠다.



#3


그러나 이렇게 섬에 나가서 찬 바람을 맞고, 익숙한 그 갈대들이 거대한 쓰레기가 왔음을 인지하고 자신들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며 회피의 몸부림을 칠 때 쯤이면 그 미스터리함도 풀리곤 했다. 그냥 나는, 두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졸라 귀찮았고.

그건 그렇더라도, 여전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있다. 솔직함과는 거리가 먼, 오랜 충청도 생활로 인해 충청도의 향토적 풍습이 익히 몸에 베어들었지만(내고장을 내가 욕하는 거니 지역비하라고 비난하지 말지어다), 그래도 한번쯤 솔직해지자면, 나는 단지 한 달의 개고생이 두려웠다. 그것만 견뎌내면 훨씬 인생이 쉬웠을 텐데.

섬을 돌다 보면 위와 같은, 당시로썬 꽤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결론을 도출하곤 새로운 마음으로 집에 복귀해곤 했는데, 일제의 암살을 피해 고종이 옮겨다니며 생활한 방 처럼 이중 문 구조로 되어있는 나의 스윗-헬-룸에 도착하면, 딸깍-하고 뇌 어딘가의 스위치가 켜지고 기껏 찬바람을 마시며, 굉장히 싫어하는 칼로리 소모와 함께 도출한 그 결론들이 발랄하게 증발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뫼비우스의 띄가 무엇인지 차츰 느끼게 되었던 시절이다.



#4


모든게 지나고 난 지금, 대체로 후회스럽고 또 후회스러워야 마땅하지만, 일견 후회스럽지 않은 부분도 있다. 비루한 육신과 괴랄한 영혼의 조악한 조합체인 내가 가끔씩 다시 0으로 수렴하려 할 때, 또다른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이 사진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그쪽으로 가지마..."는 희미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 비스무리한 상상과 함께.

어쩌다 가끔 그 때의 나와 같은 지경에서 옴짝달싹하는 친구 혹은 후배(사실 친구도 후배도 없으니 거진 남이나 다름 없다)를 발견하곤, 주제가 태산을 뛰어 넘게도 "일단 저질러!"라는 조언을 하곤 한다. 그 때의 나의 경험을 잠시 들려주며.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를 비웃는 소리가 또 들리는 것이다.


왜냐면, 지금도 나는 못 저지르고 있으니까. 







'전파낭비잡문기 > 비내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내섬 (4)  (0) 2017.11.23
비내섬 (3)  (0) 2017.01.07
비내섬 (2)  (0) 2017.01.07

WRITTEN BY
빵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