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의 어느날을 떠올리며, 2015. 9. 23. 씀



#1


떡볶이를 사러 나갔다. 삼선 슬리퍼를 질질 끌며 홍야홍야 걷던 나부랭이의 시선 속으로 끝이 메마르는 나뭇잎을 보았다. 

2년간이나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집 코 앞에서 거주하는 생물체의 이름이 무엇인지 당최 알지 못한다. 대파를 사놓으면 금세 대가라가 노랗게 물들듯 그 나뭇잎의 손가락도 물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가을이 도래하고 있다.


#2


가을이란 놈은 예리하기가 발군이라, 동서남북 어디에서나 신사된 도리를 잃지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며 삼라만상이 지어내는 혼돈에 휩쓸리지 않는 대자대비한 이내 가슴속에 한줄기 생채기를 내곤 하였다. 밤이면 가로등에 등을 내주어 창문을 뒤덮던 은행나무의 그림자가 조금씩 탈락되어 가늘어 가는 것을 보기에 차마 쉬운 일은 아니었다. 

떠나간 옛사랑과 쓰라린 감정의 잔해들이 모두 담겨있는 뇌 속 어딘가의 쓰레기통을 뒤져 무엇하랴. 견딜 수 없을 것 같던 가을은 무사의 인내를 시험하듯 단련되어 지나갔고, 그러한 계절의 반복이 벌써 수십차례. 사나이의 길에는 좌우지간 버티기만 하면 언젠가 도착하는 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내가 안시성같은 견고함을 가진 인내심과 대지를 품을듯한 그릇을 가진 대범함의 소유자라 할 지라도 전지구적 환경변화에 대해서늘 한낱 무지몽매한 인간일 따름이어니, 가을이 두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3


아주 극히 일부의 사례일 뿐이지만, 버티기 쉽지 않아질 때에는 고향의 빛을 찾아 떠나기도 했었다. 너른 강이 휘감고 도는,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그 섬에는 우두커니 서 있는 억새가 무리를 짓고 우두커니 서들있다. 우두커니만 있지않고 어쩌다 요란한 가을바람이라도 불게 되면 무당이 굿 판 벌이듯 좌우로 요동치기도 하나, 그것이 꼭 나의 내면이 투영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꼭 밝혀두고 싶다. 부동하는 마음에 일절의 흔들림이란 없다. 갈대같은 것은 신사의 사전에는 없다. 갈대같은 마음을 지닌 자들이란 모름지기 거렁뱅이의 칭호를 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해도 좋다.

다만 좌우로 펼쳐진 억새들 사이로 내놓은 울퉁불퉁한 시골길은 썩 마음에 차지 않는다. 언뜻 보면 제법 호쾌한듯 곧게 뻗어 미약한 안경잡이의 눈에도 일말의 광활함의 선사하기도 하지만, 실상은 조약돌 짱돌 웅덩이 잡초 온갖 무지랭이들이 집합하여 행자의 도보수행을 방해한다. 영 걸리적 거리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불만이로다.

호호탕탕한 걸음걸이에 부동부혼의 마음가짐으로 길 끝 커브를 돌면 찰랑이는 물결을 보고자 했던 나의 애시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아귀도나 다름없는 시골길은 꼭 나의 발목을 잡곤 했다. 여기저기 주제도 모르고 튀어나온 돌부리를 피해 걷다보면 술 취한 듯 보행은 갈지 자. 요동평원을 달리던 고구려의 장수들이 그러했듯 그윽한 눈길로 저 먼 곳을 응시해야할 나의 눈은 쳐박혀진 고개 덕에 돌부리를 파악하기에 급급하다. 딱한 노릇이다.

여기서 그치면 좋으련만, 지형지물에 고전을 치르고 있는 덕에 부득불 초라해진 마음이 불쑥 참호 밖으로 고개를 든다. 녀석은 철모를 부여잡고 전황을 살핀다. 그러면 또 녀석을 반기듯 억새들이 미친놈 빤스 휘날리듯 요동치는 것이다. 유유상종이다. 녀석은 때가 무르익었음을 느끼고 평정심으로 무장한 내면의 전선을 돌아 후방에서 게릴라 공습을 시작한다.

그리하여 이윽고 반절쯤 걸었을 때에는 엉망진창의 불바다가 펼쳐지는 것이다. 왜 또 이곳에 와버렸나 하는 후회를 해야 할 뇌 속 작전사령부는 융단폭격에 와해되어 버렸고, 그나마 우직한 두 다리만 하염없이 걷는다. 걸을 뿐이다. 그 사이에 동네방네 울음소리가 터진다. 들어줄 이 하나 없건만 가가소소 뭐가 그리 원통한 것이 많은지, 초라한 마음이 메뚜기떼 처럼 쓸고 간 자리에는 웃음 한 톨 남아나는 것이 없다 하겠다.

한바탕 요란한 곡소리가 잦아들 때 즈음하여 저물어 가는 태양이 봉긋 솟은 뒷산마루에서 노도하며 내리쬔다. 태양의 엄중한 꾸지람은 내 뒤통수를 한번 치고 앞으로 좀 더 날아가, 찰랑이기 시작한다. 때론 반쪽이나고, 다시 하나가 되어, 찰랑거린다.

이 때는 이미 곡소리는 멈췄지만 다들 널부러져 어쩔 줄을 모른다. 태양의 준엄함조차도 공허함에게 빨려들어간다. 다만 찰랑이는 것을 보고 나서야, 모든 이들은 고개를 돌리는 것이다. 샛노란 하늘과 그 아래 샛노랗지도 않고 또 검지도 않는 찰랑이는 것들을. 그것은 세계로 쏟아져 불바다를 지우고, 꽉 막혔던 것들을 치워버려 밖으로 통하게 한다. 찝찝했던 기운은 날아가고 새로운 공기가 드나든다. 그제서야 널부러져 있던 이들이 찢어졌던 벽을 대어 붙이고, 부서졌던 문을 고쳐세우는 것이다.

비록 어설픈 티도 나고, 옆 문짝과 색깔도 다르지만 좌우지간 수리를 끝마치면 몸을 돌린다. 찰랑이는 소리가 귀에서 멀어져가고, 던져두었던 찌꺼기가 팔당댐인지 서울인지 서해인지 아무튼 어딘가로 흘러가는 소리도 멀어지면 별안간 돌아오는 길은 떡볶이를 사러 나갈 때 처럼 홍야홍야 걷게 된다. 돌부리가 다 무어냐, 사내의 길에는 직진만 있다. 제법 날카롭게 솟은 돌부리조차 즈려밟아주거나 요로코롬 피해가는 협상가의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가을은 그렇게 스며들었다가 떠나는 것이다.


#4


관찰과 분석을 모든 일에 앞서서 시작하는 나의 진중한 습성을 통해 관조하였을 때, 나는 손 끝이 바삭해지는 나뭇잎에서 치킨이 떠올랐고, 치킨에서 노란색의 석양빛이 떠올랐으며, 석양을 생각하니 그 촌스런 이름을 가진 섬이 떠올랐다. 이러는 꼬라지를 보니 올 해 가을은 역사에 연도를 새길만큼이나 지독할 것이 분명하다. 상처에 빨간약을 바를때만큼이나 쓰라릴 것임을 확신한다.


좀 더 무르익기를 기다려보자. 계절도, 생채기도.

떠나기 좋을 때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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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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