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꿈을 묻고 온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자신의 마음조차 헤아릴 줄 모르던 나는, 저들에게 우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나는 사소한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어떻게든 답을 스스로 찾아내려는 끈질긴 시도를 도외시한 채, 답지가 나오는 챕터에 손가락을 넣고 문제와 답지의 페이지를 와리가리하며 열심히 풀이를 외웠다. 그렇게 숙제는 대충 떼웠는데, 이름이 불러져 칠판에 풀이를 써갈 때엔 영락없이 답지를 봤다는 사실이 대뽀록, 천인공노할 짓거리를 저지른 학생으로 낙인받고 모두의 비웃음을 사곤 했다. 그 끝은 항상 나머지 공부로 귀결되곤 했으니, 모두가 떠난 교실, 창문을 파고드는 석양의 잔인한 조롱이 나를 비웃곤 했다. 

벌써 십여 년이 훨씬 지난 일이나, 인간이 대게 그렇듯 습관이란건 쉬이 바뀌지 않는 법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사에도 늘 습관만이 자리하니, '습관이란 게 무서운거더군'이라 노래하던 롤러코스터의 목소리가 놀림처럼 들리는 것은 오로지 자격지심의 때문이 아니라, 세상이 애초부터 글러먹었기 때문이라며 우격다짐하고 있다.





#2


시간은 흐르고 섬도 매년 모습이 변한다. 한 때 찰랑이는 단발을 휘날리며 눈가를 찌르는 머리칼이 성가셔 "이까짓 머리카락, 확 잘라 버릴까" 고민하던 한 청년이, 그러나 사실은 그닥 멋잇게 보이지도 않지만 나름의 가오를 유지하기 위해 끝끝내 자신의 헤어스타일을 고수하지만, 어느세 세월의 풍파를 정면으로 맞아버려 빼곡히 덮여있던 머리카락이 수줍은 살색을 드러내며 훤해지듯, 섬도 매년 억새의 자리를 잃고 앙상한 대지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현상을 보고 점을 치는 것은 아주 오래된 행위이다. 문명이라 부를 만한 것이 출현한 것보다 훨씬 오래전 일이며, 어쩌면 집단을 이루고 농사지를 짓던 것보다 더 오래된 일이라는 근거도 얼핏 눈에 띈다. 대체로 신의 행위라 여겨졌던 자연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삶을 가늠하곤 하던 닝겐의 모습은, 알파고 성님이 곧 세계를 지배할 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확산되는 이 때, 한쪽으로는 알파고에 충성충성 댓글을 쓰면서도, 다른 한 쪽으로는 역시 그와 유사한 행위를 하고 있다. 어쩌면, 한 3백년 쯤 지난 뒤 지금의 이 시기를 인공지능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지칭할 지도 모른다.

만약 섬의 변화를 통해 나의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면, 풍부했던 감성과 모두를 품을 수 있을 듯한 넉넉한 품을 가진 한 소년이 현대 사회의 쓰라림과 이별의 상처 끝에 점차 헐벗은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는 해석을 하나 할 수 있고, 또다른 해석으로는 곧 탈모인의 대열에 합류할 지도 모르겠다는 것도 가능하다.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가 애타게 유전자를 추적한 결과로는 탈모인은 없다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조금이나마 위안을 삼아본다. 술에 취한 가족분들 중 한 분이 선조 중에 대머리, 그것도 대머리 동아리가 있다면 회장을 넘어 고문급의 명성을 지닐 수 있을 만큼의 대머리였다는 기절초풍할 사실을 살짝 흘린 것도 같으나, 기분탓이라 흘러넘겼기에 그 사소한 말은 고려하지 않기로 했다.

좌우지간, 모든 것이 메말라 가고 있다는 말씀 되시겠다. 아, 딱 하나, 눈치없이 늘어나는 몹쓸 뱃살 빼고.




#3

엄혹한 시대를 살았던 한 시인은,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단다. 사람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한다는, 초등학교 시절 칠판에 학습주제를 적어놓다가 갑자기 일장연설을 하시던 어떤 쌤의 말씀에서 배웠듯, 나는 내 주제를 잘 아는 사람이므로 시인은 커녕 글 쓰는 사람이라 소개하기에도 마음 한 켠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난데없지만 면목동을 한 큐에 날려버릴 수 있을만큼의 파괴력을 지닌 면목없음과, 맹자가 다시 태어나 인간의 모든 감정은 사실 수오지심에서 비롯된다며 자신의 사상을 재편할 만큼의 부끄러움이 있다. 하지만 윤동주도 맹자도 면목동 사람들도 다 닝겐이듯, 나 역시 잎새 대신 억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운 것은 사실이다. 괴로운 나머지 괴력몬이 되어 이 드넓은 억새밭을 다 갈아 엎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녀를 괴롭혔던 죄, 여기에서 받는 것인가.


메말라 가는 것 중에서 누가 쫓아오지도 않는데 헐레벌떡 스스로 다 벗어제끼며 도망가는 것들 중에 선두를 이루는 것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두번째가 글솜씨이다. 항의하지 않아도 좋다. 나의 글솜씨는 단 한번도 공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만약 글솜씨를 자격시험으로 측정할 수 있다면, 낙방에 낙방을 거듭해 한 60년 쯤 지나면 '최고령 응시자'로 신문에 이름을 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저 게임이나 즐길 줄 아는 친구들중에서 좀 쓰는 편에 속했던, 그러나 백일장만 나가면 번번히 지도 선생의 '염세적이다.', '우울하다.'는 평을 받고 억지로 수정, 결국 이도 저도 아닌 작품을 내곤 주최측에게서 표절 의심을 받곤 하던 글솜씨로는 아무래도 세상에 이름을 내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꼭 세상에 이름을 낼 만한 솜씨를 지닌 사람만 글을 쓰라는 법은 없지 않는가. 니체와 모짜르트는 인류가 절멸할 때까지도 이름을 남길 만한 업적을 쌓았다지만, 그 둘에 미치지 못한 2인자들의 작품 따위 아무래도 알 게 뭐냐라지만,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2인자의 자리까지도 미치지 못하지만, 모든 인생엔 나름의 지옥이 있는 법이며 그래서 또 아름답기도 한 법이다. 

아아, 완연한 아름다움을 피우고 싶어라! 묵직한 침묵 속에서 강려크한 절규를 내뱉으니, 저 비루한 억새들, 날 두고 이래라 저래라 가르칠 때는 언제고 죄다 쫄아서 몸을 뉘인다. 하늘거리며 풀썩 눕는 꼴이 꼭 격렬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어하는 고양이, 혹은 그런 내 모습 같다. 하늘거리며 아무 것도 하기 싫지만, 그러나 하늘거릴 수 밖에 없는 세파에 어리둥절, 우왕좌왕, 좌충우돌하는 것 마저 꼭 닮았다. 어찌하여 너희들은, 내가 멍청할 때엔 현명하고, 내가 현명해지는 척 할 때엔 멍청해지는 것이더냐. 스핑크스 앞에서도 툭툭 묘답을 내뱉을 것만 같던 지난 날의 녀석들은 자식 농사를 망쳤는지, 아무런 답이 없다.

답을 내지 못하는 것도, 답이 없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다 맞는 답을 내어 답답해지는 것도, 뭐든지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괘씸한 녀석들이로고.





#4


사건은 항상 생활의 불편을 불러온다. 편안한 생활이란 건 무사안일한 일과를 전제로 놓고 있기에, 사건이 성격이 즐거움이든 우울함이든 간에 편안한 생활을 담보해 주지 못한다. 아주 높은 비율로 후자의 가능성이 높은 것은 썩 반갑지만은 않은 소식이나, 어찌하여 닝겐은 이 모양 이 꼴로 진화 되어온 것인지 아프리카에서 발굴된 이브 유골을 마주해 욕을 퍼붓고 싶다. 도대체, 뭐 때문에, 어찌하여, 닝겐은 기쁨에는 그다지도 빠르게 시무룩해지거늘, 우울함의 총량은 감정의 골짜기에 쌓이고 쌓여 도저히 손도 못 댈 지경에 이르러서도, 당최 익숙해지지도 무감각해지지도 식지도 않는 것일쏘냐! 이브 할머니께선 길 가다 뺨 맞은 것처럼 어처구니 없어하실 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는 할머니 대로 나름의 조상님들에게 항의하시면 될 것이다. 억울함을 해소하는 것으로는 자고로 남 탓이 제일이다.

고로, 내가 요즘에 조악하고, 한심하고, 엉망이며, 낙서같고, 비루하며, 고루하고, 졸렬하고, 낙서 수준의 글들만 써 제끼고 있는 것은 오로지 그녀 탓이라는 훌륭한 결론에 도달했다. 억새들에게 동의를 구하자, 사정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보검을 꺼낸다. 으음, 만사가 편안해졌다. 삼라만상에 피어나는 찰나의 감정들이란 모조리 호로몬의 작용이라는 방식으로 설명해버리면, 혹은, 우주구급, 혹은 육도윤회와 일만 번 전의 전생 을 들고 나오면 이 생에 피어나는 괴로움 따위 모조리 한 조각 티끌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에 도달한다. 그 드넓은 국부 은하군조차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의 한 조각 줄기에 지나지 않으며, 라니아케아 초은하단은 아예 관측가능한 영역을 홀라당 벗어나 버리지 않던가.

그렇게 시야를 무제한으로 넓혀보지만, 불변하는 사실이 단 하나 있다. 나는 바늘로 살짝 찔러도 일본도를 맞은 조선의 갑사처럼 비통한 마음을 못 이겨 떼굴떼굴 그르는 강직한 마음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그런 정상을 참작할 만한 사유로 인해,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정상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여전히 어느 중력에 메여야 할 지 알지 못한 채,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언제 또다시 태양을 찾아 뵐 수 있을런지 기약없는 여행을 떠나는, 기약없이 떠나다가 어느 단단한 행성에 부딪히거나, 혹은 조금씩 자신의 존재를 태양풍에게 빼앗겨 소멸할지 모르는 혜성처럼 되버린 삶이여, 아아, 훌륭하다. 마땅한 단골집을 잃어 떡볶이를 먹지 못하는 요즈음의 나이므로, 바늘로 찌른 듯한 통증에 다소간의 에로도 겪지 못하고 애로를 겪는 것을 감싸주어야 한다. 답을 내지 못한다 하여도 감싸주어야 하는 것이다. 

양심이 있는 존재라면 피어오르는 한심함 따위, 만인에 대해 투쟁하듯 뿌리채 뽑아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5

그러나 모든 것을 뿌리채 뽑는다 하여도 달라지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안다. 달라지지 않았기에 머무르고만 있단 것도 안다. 놓친 까닭엔 다 이유가 있다. 걷지 않으면 나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에서 나아가지 못해 머무르지 있는 것도 안다. 안다. 다 안다. 알기만 하고 모르기만 하니 매년 이곳에 되돌아 온다는 것도 안다. 아는 것들이라곤 아무렇지 않게 엄청난 것을 해내버리는 책 속의 사람들이지만, 나는 그것에서 아무 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필부와 영웅을 가르는 것은 한 끗 차이지만, 각자의 앎은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리나 아는 것만으로는 답을 낼 수도, 구할 자격도 없었다. 녀석들이 고개를 푹 숙이며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도 알았다. 알았으나, 나는 항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치에, 논리에 모두 맞는 것이라고 다 납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블랙컨슈머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인을 비판할 처지가 되지 못함을 선택했다.

올해의 섬은, 그 낯빛이 유난히 흙색이었다. 다시금 꿈을 묻다가, 꿈을 묻었다. 


돌아오는 길은 평온한 일상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는 마음이었다. 허전한 곳은 다시금 떡볶이로 채워야 겠다. 당장은 찾지 못한 단골이 될 집을 어서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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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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