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도, 역시 틀렸다.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겠다.


목표를 향해 시속 200km/h로 돌진하는 기차같은 인생이 어딘가엔 꼭 있다. 지도 한 구석에 빨간 스티커를 따악 붙여놓고 오로지 그곳만을 향해, 그 여정에 걸리적거리는 잡초와 추위와 배고픔과 괴로움과 귀찮음과 포기하고싶은 마음과 집어치자는 유혹과 분탕질과 반동질과 엄마보고시픔과 외로움, 기타 등등의 모든 고난이 도래하더라도 그 모든 것을 한 큐에 날려버리고 꿋꿋이 걷는 사람들이 어딘가엔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쉽게도 나는 아니었다. 지금껏 나는 귀찮으면 집어치고, 될 대로 되라며 미뤄두고, 오늘 할 일은 다음주로 미루며, 옷깃을 스미는 봄바람에도 시리다며 투덜대고, 떡볶이나 초콜릿을 무사의 마음으로 참아내는 인내 따위도 없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났으면 단 10분 만에 3등 신민으로 분류되어 징병조차도 못 당했을 터다. 뜻밖의 개이득이랄까.


'성실'이라는 단어와 나의 거리는, 교차 편집으로 반전을 낚시한 <너의 이름은>의 마코토 감독이 야무지게 포장하더라도 마리아나 해구의 최저점과 카일라스 산의 최고점의 거리보다 멀다. 아니, 이것으론 부족한 표현이다. '성실'과 나의 거리는, 그 사이에 수금지화목토천해왕성을 다 집어넣어도 넉넉할 만큼의 거리를 지녔다.


그러나 완벽한 타원형 궤도란 것은 없듯, 나와 '성실'이란 녀석이 견우와 직녀처럼 아주 오랜만에 짧은 만남을 가지게 될 때가 있다. 다른 이들이라면 아마 이때가 성장의 타이밍, 채사장이 말한 <열한계단>의 한 계단쯤은 될 수도 있으나, 유감스러운 것은 '나'라는 단어를 리꼬르하자면, '무능'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 '무능'과 '성실'의 조합, 이 치명적인 졷망행 로맨스가 고비마다 폭풍 역주행이란 아름다운 결과로 도출되곤 했었다.


요즘은 그래서, 아주 잠깐 성실과 부비부비하며 항상 아쉬운 이별과 애타는 마음을 가지고 살 바엔, 그냥 불성실하는 건 어떨까 싶다. 초지일관으로 불성실하면 민폐라도 끼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프로계약도 맺지 못하고 방출당한 에펨 생성선수같은 처지에 놓이게 되겠지만, 생성선수도 게임에서 더이상 그려지지 않는 또다른 스토리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따위 스토리 따위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내가 그린 스물 여덟이 겨우 이토록 노잼의 연속일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듯, 모든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스토리를 통틀어 꿀잼과 노잼의 비율이 9:1만 되더라도 꽤 괜찮은 나날이라 불릴 것 같다.


결말을 알고도 재밌는 영화가 진짜배기듯, 대기만성이나 로또당첨 따위의 대박역전은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세계관에 산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스토리는 이어진다. 재미없어도 어쩔 수 없다. 요즘 쓰고 있는 아이템도 졸라게 재미없지만, 근대에서 넘어온 지 100년은 됐기에 모든 사람들이 스토리를 쓸 자유는 이미 보편화됐다.


자, 그럼, 늘 그렇듯 무한한 일상의 궤도를 잇는 스토리를 쓰러 가볼까. 댁도, 나도, 우리집 고양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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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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