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름다움을 더하기와 빼기로 책정한다고 가정하면, 나는 일관되게 빼기파에 속한다. 화려한 색감과 복잡한 기교가 가득한 예술보다, 여백과 본연의 모습을 살린 예술에 더 마음을 뺏기는 쪽이다. 사람을 바라볼 때에도 그렇다. 나는 화려한 웨이브와 트렌드를 쫓은 컬러의 헤어를 가진 사람보다 몇가지의 꾸밈으로 충분한 사람을 더 원해왔다. 

'검은단발머리'란 빼기파로 따지자면 가장 최고봉의 위치라 할 수 있다. 숏컷이든 단발이든 그것은 관계가 없다. 심지어 마구 헝클어져도 좋다. 머릿결이 좋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사실은 머리카락 사이에서 오롯이 솟아난 두 개의 귀와, 뚜렷하게 본모습이 보이는 목선과, 또한 가려지지 않고 쭈욱 뻗어진 어깨선을 보는 것이 더 좋다.

아마 그래서 검은색 머리를 고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염색이면 괜찮지만, 아무리 단발이라 할지라도 색감이 화려하면, 내가 보고 싶은 귀나 목선, 어깨에 아무래도 시선이 덜 가게 된다. 마우스 커서를 아무리 옮기려해도, 나도 모르게 19금 광고를 클릭하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모든 남성들에게 긴 머리가 어울리는 것이 아니듯, 모든 여성들이 또 '검은단발머리'를 잘 소화하는 것은 아니다. 꽤나 운 좋게도, 나는 꽤 오래 전에 그런 사람을 알게 되었다.


#2


나는 그녀의 단발머리를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시도 때도 없는 단발타령이 본인을 향한 것임을 그녀도 일찌감치 알고 있듯, 항상 멍을 때리는 척을 하며 그녀의 얼굴을 오래 훔쳐보는 것 또한 알면서 모른 척 지나가는 일이다. 한 해가 다르게 주름이 깊어지는 나의 얼굴과는 달리, 그녀의 얼굴은 10년 가까운 시간에도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다. 가끔은 그녀의 머리도 제법 길었던 때가 있으나, 때때로 쿨병에 걸리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아예 남극 같은 사람이 된 것인지 몰라도, 시원히 머리를 쳐내며 내 기억 속에 '그러한' 모습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되돌아오는 것은 나 역시 그러했다. 외로움은 언제나 우리를 집어 삼키기 위해 입을 벌리고 있고, 이상적인 만남은 한 5만 번 윤회를 거듭한다 해도 쉬이 이뤄지지 않는다. 그러니 적당 적당히 맞춰가며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이성적인 관계이든, 적당한 인간관계에 속하는 만남이든, 혹은 그저 서로를 향해 외로움을 쏟아내기 위한 만남이든, 모든 관계에서 적당주의적인 태도를 취할 수 밖에 없어진다. "이제는 다른 스타일의 머리가 좋아"라며 섣부른 결론을 낸 채 이제 다시는 검은단발머리의 그녀를 보지 않아도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며 자신만만해 하다가도, 결국은 "아무래도 역시 검은단발머리가 최고야."라며 그녀의 얼굴을 되새기는 좌절을 반복하게 되었다.

여러 문제에 있어 상호간의 입장차는 쉬이 좁혀지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검은단발머리가 가장 어울린다는 사실은 그녀도 나도 모두 동의하는 바가 틀림이 없다.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에 대해선 여전히 견해의 차이가 꽤 벌어져있는 것은 썩 만족스럽지 않지만, 정작 그녀가 잘 어울린다고 평한 머리를 하고 다녔을 때의 기억들은 썩 좋지 않아서 영 손이 가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꽤 오랜 시간동안 그녀의 얼굴(과 단발머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3


서로 '누가 누가 더 피곤한가'를 겨루는 듯한 피로한 모습은 차치하더라도, 매번 조금씩 달라지는 그녀의 연한 화장법 역시 논외로 두더라도, 그녀의 모습에서 지난 번과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내는 일은 꽤 즐겁다. 억지로, 매우 억지로 달라진 요소를 찾아낸 다음, 그녀에게 찾아낸 바를 부풀려 통보하며 "역시 넌 자꾸만 변하는구나?"라는 말을 아무렇지 하는 일은, 영 몹쓸일이지만 꽤 즐거운 일이었다. 

사실은, 그다지 변한 것이 없다. 그녀의 귀(딱히 이유는 없지만, 나는 그녀의 왼쪽 귀를 더 선호한다.)는 여전히 시크하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그녀의 귀가 빨개지는 상황은 흔치 않아서 나는 그녀가 화를 낸다거나, 아니면 화를 낸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또 화를 낸다거나 할 때 그녀의 눈을 보는 척하며 사실은 귀를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머리칼이 스쳐지나며 귀는 여전히 시크하며 뾰로퉁한 표정으로 그곳에 있었다. 그녀가 사는 동네의 악명높은 칼바람이 싫은 이유는, 물론 춥다는 것인 첫번째 이유겠지만, 몹쓸 바람들탓에 그녀의 머리칼이 흐트러져 하얗고 혹은 빨갛던(빨갛던 때가 더 좋았다는 것은 조심스레 밝혀둔다.) 그녀의 두 귀를 가린다는 것이 두번째 이유라 할 수 있다. 

놀라울만큼이나 주름이 깊어지지도, 줄어들지도 않는 그녀의 목 또한 관찰하기에 좋은 포인트다. 언제나 아주 심플한 디자인의 목걸이가 감싸고 있는 그녀의 목은, 그녀의 작은 얼굴에 비해 다소간 튼튼해보이나, 그래서인지 시선을 자꾸 뺏어간다. 그녀의 목이 가장 돋보일 때는, 아무래도 브이넥 회색 면티를 입었을 때였던 듯 싶다. 집으로 돌아와 나는, 그녀의 회색 면티를 집안에서 볼 수 있을 그 때 그녀의 남자를 꽤 저주했었다. 어쨌든 그녀의 목은 그 외적인 요소보다도, 이제는 쉬이 들을 수 없는 그녀의 '여자여자한' 목소리가 저 곳에서 나온다고 생각할 때 더 빛이 난다. 그녀가 우효의 노래를 부를 때, 기억 속에서 알싸히 퍼지는 목소리가 들렸으니, 앞으로는 자주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에 따라 늘어났다, 줄어들었다, 동그라졌다, 가늘어졌다하는 눈 모양새도, 건조한 공기 때문에 삐쭉삐쭉 갈라진 입술도, 동그란 선을 그리며 언제나 손가락으로 꾸욱 눌러보고 싶지만 실제로 그랬다간 온갖 욕을 바가지로 먹을 게 분명하기에 매번 참아야 하는 그녀의 양 볼도, 사실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다고 말하기에 부끄럽던 때처럼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름답다고 말할 때의 그녀가 항상 그랬듯, 어떠한 칭찬에도 그녀는 모른 척 할 게 분명하기에, 나는 "눈 밑에 피로한 자국이 완전히 굳었구만?"하며 또 실없는 소리를 하고야 말았다. 

나란 닝겐, 잘했다. 하하. 이번에도 또 질 수는 없는 법이다. 추악하고도 미련한 본성에 지지 않는 스스로의 이성에 치얼스다.


#4


변한 것이 있다면, 아무래도 그녀가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내 눈이 문제일 것이다. 나의 뇌나 마음은 상관없다. 오로지 제 멋대로 세상을 판별하는 눈의 잘못이 분명하다. 보통은 잘쌩기기 위해서 안경을 쓰는 존잘남들의 상황과는 달리, 어떤 안경을 써도 못생김이 더해지는, 그렇다고 안경을 벗으면 오히려 상황이 안 좋아지는, 이도저도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존못으로 태어남을 받아들여야 하는 내 사정 상 안경을 벗을 수는 없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가 끝이나면, 나는 안경을 바꾼다. 그동안 바꾼 안경 갯수야 당연히 묵비권을 행사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안경을 바꾸는 가운데에도 그녀는 거기에 늘 그대로 있었다.

재밌었다. "나는 여기에 서서 항상 그대로 있을게,"라며, 소름이 돋는 말을 아무렇지도 하던 나는 아무래도 북한이나 ISIS에 납치되어 버린 채, 금방이라도 아스라히 사라지거나, 홀연히 멀어질 것 같았던 그녀는 항상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물론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은 그녀 역시 꽤 많은 것들이 변했다. 나는 썩 그것이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내가 만족스러운 것이 어디 몇가지 되기나 하던가. 아주 특수한 상황이나 짧은 순간만을 만족스러워하는 고약한 심보탓인지, 웬만한 일에 모두 툴툴대며 쿨병걸린 중학생 같은 태도로 일관하던 내가 아닌가. 어라, 혹시 이 문장, 그녀의 모습이기도 한건가?

제멋대로 변하는 그녀의 내면도, 쉽게 변하지 않는 그녀의 외면도, 밝힐 수 없는 애로사항으로 인해 애타던 내 기억도, 썩어가는 나의 피부도, 모두 그녀의, '아름답다'라고 쉬이 말할 수 없으나, 예쁘다고 하기에도 다소간 민망하나, 내가 애타게 부르짖는 단발찬양론의 가장 이상적인 모델임은 아마 오래도록 불변할 것 같다.

이미 변해버린 것들이야 어쩔 도리가 없지만, 검은단발머리여, 영원할지어다. 



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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