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길은 일방통행으로 흐른다. “사랑한다”는 말을 아무리 퍼부어도 “왜?”라는 질문을 받는다. 반대로 “날 왜 사랑해”라는 질문을 아무리 퍼부어도 “그냥”이라는 말을 듣는다. 우리의 모든 사랑은, 태생적으로, 극복할 수 없는 소통의 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말이 잘 통한다”라는 이유는 적잖은 거짓이다. 사람은 말을 통해 생각을 전한다. 생각은 말을 통해 생겨난다. 다시, 생겨난 생각을 담고 말은 떠난다. 그 말을 듣고 또 다른 생각이 피어난다. 무수히 많은 생각은, 다만 비슷해 보일 뿐, 단 하나의 모양새도 똑같이 생기지 않았다. 구조적으로 “말이 잘 통한다”라는 이유는 성립할 수가 없다. 우리는 크고 작은 소통의 답답함에 시달리며 살아가야만 한다.

 

“말이 잘 통한다”는 이유로 사랑에 빠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오직 둘만의 우주가 탄생하는 새벽녘의 시간. 감정의 온도가 모닥불보다 따스해질 때의 말은 다르다. 그것은 그럴 리 없을 것이라 여겼던 말의 모양새를 비슷해 보이게끔 우리를 현혹한다. 누구에게도 느낄 수 없었던 것이었노라, 다시는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없으리라. 마법의 시간은 사기와도 같이 우리의 눈을 속인다.

 

“말이 잘 통한다”가 유효한 시간은 필연적으로 만료될 수밖에 없다. 둘만의 우주가 탄생하던 시간은 점차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다. 그 반대의 틈새로 솟아오른 자그마한 미혹의 점이 넘실거리는 사랑의 바다를 오염시킨다. 오염된 한 줌의 점이 생각에 실린다. ‘왜 그렇게 말을 했을까?’ 납득은 되지 않으나 납득 해야만 한다. “말이 잘 통한다”라는 말이 살아있기 때문이다. 단 한 줌의 의혹도 사라지지 않으면, 자그마한 물구멍에 터지는 댐처럼, 잘 통하던 말의 모양새가 와르르 무너진다.

 

“말이 잘 통한다”는 말은 그때부터 명제가 아니라 선언이 된다. 참과 거짓을 논해야 하는 영역에서 멀어진다.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가 우리의 존재를 휘감는다. 어떻게든 통하게 만들어야 하는 사명을 띠게 된다. 좀처럼 납득이 되지 않는 위기의 순간, 우리는 광야로 나가 기쁘게 고독을 마주한다. 잘 통하는 것이 얼마나 안락한 것이었는가. 떠나온 그곳은 여기에 비해 얼마나 행복한 곳이었던가. 행인은 떠나가던 말을 다시 품고 집으로 돌아온다.

 

“말이 잘 통한다”라는 말은 기어코 끊어질 듯 희미한 숨을 내쉰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말로도 행복한 웃음을 짓던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도 고개를 끄덕이던 그. 말의 생산 없이 껴안듯 감싼 팔베개로 모든 것을 읽어내던 그는 희미하다. 아무런 의미 없이 던진 말은 시간의 틈새로 사라져 버린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말에는 갸우뚱한 표정을 지을 뿐이다. 요새처럼 단단한 팔베개를 만든 손은 슬쩍 빠져나온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가. 잘 통하던 말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가. 티 없이 맑았던 사랑의 바다는 어느새 이토록 검게 물들었는가. 행인은 공황에 빠진다.

 

작가는 말한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이다, 라고 아버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있었던 일이 없었던 일이 되거나 없었던 일이 있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말하지 않는 것이 더 크게 말하는 방법이 되는 말이 있다. 사랑의 말이 그렇다. 무엇보다 사랑은 잘 말해져야 한다. 예컨대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말해져야 한다. 그것은 사랑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사랑 때문에 시작되었고 사랑 때문에 이루어졌다. 나는 장작 위에 누웠고, 아버지는 칼을 들었고, 신은 놀라서 소리쳤다.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라.” 바치라는 명령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대체되었다.

 

 

 

 

말해진 사랑은 그 자체로 존재를 엮는다. 말해지지 않는 사랑은 존재를 광야에 나서게 한다. 엮일 것인가, 나툴 것인가. 말해지지 않는 사랑에 가슴 아파하던 그가 무색하게, 말해진 사랑이 채워놓은 족쇄에 고통스러워한다. 족쇄에서 해방하여 자유로울 것인가, 훈장처럼 족쇄의 무게를 짊어질 것인가. 숙명처럼 지어진 숙제에서 우리는 단 한 순간도 도망칠 수 없다.

 

이해는 다시 불가해의 영역으로 돌아왔다. 사랑은 그래서 무한한 힘을 머금었다. 이 고통스러운 무게를 짊어지게 할 만큼, 그래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으로 완성하고자 할 만큼, 불가해한 영역의 힘으로 사랑은 삶을 움직이게 만든다.


WRITTEN BY
빵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