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서재에서 ①] 길 잃은 청춘의 아이슬란드 여행기 : 김동영 저, 『나만 위로할 것』 (달, 2010)

 

 

한동안, 아이슬란드는 미지의 땅이었다. 거친 바닷사람들과 바이킹의 이야기가 신화처럼 내려오는 땅. 밤이면 찬란한 오로라가 검은 하늘에 융단처럼 펼쳐지고, 낮에는 세상을 다 묻어버릴 듯이 퍼붓는 눈보라가 태초의 모습으로 복원시키는 자연의 땅. 가끔 <걸어서 세계 속으로>와 같은 여행 방송이 아니고선 좀처럼 그 모습을 볼 수 없던 날것의 땅이었다.

 

이 책은 벌써 10년도 전인 2009년, ‘생선’이라는 필명으로 방송 작가와 출판을 겸업하던 김동영 작가가 180일간 아이슬란드에서 지내며 쓴 여행기이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던 아이슬란드의 이야기는 10년이 지난 지금, 사람들의 입소문을 탄 리얼 예능 프로그램, 그리고 여행 유튜버들 덕분에 제법 가까워진 것으로 보인다.

 

책날개에서, 그는 이렇게 자신의 ‘현재’(그러니까, 책이 나왔던 2010년의 시점에서)를 이렇게 표현한다.

 

좀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싶었고,
좀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었으며,
좀 더 많은 길을 걷고 싶었다.
그리고 좀 더 멋진 사람이 되는 것.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평범했고 참을 수 없이 무기력했다.

 

사춘기가, 혹은 중2병이, 10대 시절에만 올 것이라고 믿는 것은 편견이다. 20대에도, 30대에도, 심지어 모든 것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의 나이에도 무게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가벼웠던 무기력함이 먼지처럼 켜켜이 쌓여, 어느 순간 더 이상 짊어질 수 없는 짐이 되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른다. 그처럼, 몽유병과 수면장애, 자각할 수 없을 정도의 심한 폭식에 시달리던 생선 작가는 ‘늦은 중2병’에 빠진 듯했다. 그것이 저 멀리 아이슬란드를 향해, 그것도, 작가의 팍팍한 잔고를 탈탈 털어서까지 떠나야만 했던 계기였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공허에서 허우적거리게 했을까?

 

당신은 날 부러워했지만 난 당신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
당신이 보람찬 하루 일을 끝내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TV를 볼 때 난 벌써 어두워진 창문을 바라보며 시간은 왜 이렇게 빠른 건지 걱정스럽고 두려웠던 겁니다. 당신은 어디든 자유롭게 떠나고 아무 곳에도 얽매이지 않은 나를 부러워하며 자유로운 영혼이라 부를 때 난 말하고 싶었습니다. 내가 만약 당신처럼 살 수 있다면 당신처럼 살고 싶다고. 하지만 난 그렇게 살기에는 너무 게으르고 불안정한 인간이기에 그럴 수 없어 지금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고

 

책은 끊임없이 ‘너’를, 그리고 ‘당신을’ 향해 대화와 질문을 던진다.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아이슬란드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 때로는 종이 너머 그 활자를 읽는 독자에게로 ‘너’는 향한다. ‘나’는 ‘너’가 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상대론적 개념의 재발견, 책은 끊임없이 타자와의 이뤄졌거나 이뤄지지 않았던 대화를 꺼내며 허무에 휩싸였던 자신을 되찾아 나간다. 그러나 반대로, ‘너’는 때때로 너무나 잘나고 멋있어, ‘나’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드는 빛이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이래서는 안 될 것만 같다는 불안이 정처 없이 내면을 휘젓지만, 하루아침에 뚝딱 새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각자가 가진 삶의 무게, 각자가 가진 삶의 성취는 계량할 수 없는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매 순간 저울질하며 자신의 무게를 측정한다.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검은 손들이 우리를 그 수렁으로 잡아당기고, 자신이 믿어 왔던 것, 자신이 해 오던 것 또한 빛이 바래, 어느새 자신조차 잃어버리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여행이 그러했듯, 작가의 아이슬란드행은 ‘도피’였을 것이다. 그의 내면에서 그를 휘젓는 허무와도 같이, 그 역시 정처 없이 이국의 낯선 풍경을 향해 거닌다.

 

그 길은 사람이 자주 오고 가는 길은 아니었다. 마을 한쪽 구석에 있는 길은 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산 정상에는 오래된 산장이 하나 있다고들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산장으로 올라가고 있었고 넌 사륜구동 오토바이를 타고 흙먼지를 폴폴 날리며 내려오는 길이었다. (...)다시 갈 길을 가려는데 네가 뒤를 돌아 내게 소리쳤다.
“어디로 가는 거야?”

 

낯선 땅, 낯선 마을, 그리고 그 마을 사람들조차도 가지 않는 낯선 길에서 두 낯선 이가 만난다. 둘은 가벼운 미소를 향한 채 스쳐지나 치지만, 한 이방인이 부리는 ‘객기’가 걱정됐던 낯선 이는 오토바이를 돌려 그를 만류한다. 특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그 산장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낯선 이는 이방인에게 ‘태워 주겠다’라는 호의를 내비치지만, 이방인은 그 친절을 정중히 사양한다. 단지, 조금(?) 걷고 싶을 뿐이라고.

 

그 길의 끝에서 이방인이 발견한 것은 사무치도록 새삼스러운, 아이슬란드가 아니어도 괜찮을, 평범하기 짝이 없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넌 이 길에 아무것도 없다고 했지만 난 그 길에서 산들바람을 만났고 네가 남기고 간 타이어 자국도 발견했으며 그리고 누군가 버리고 간 장갑 한 짝도 찾아냈어.
넌 모르겠지만 이게 여행인지도 몰라. 그래서 꽤 많은 대가를 지불하고 여기까지 온 것인지도 몰라. 마치 돌과 돌이 부딪혀서 불꽃을 만드는 것과 같은, 실제로는 아무것도 아닌데 정말로 굉장한 그 무엇을 만나게 되는 그런….

 

특별한 것이라는 말이 담은 함의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다. 사람들이 찾는 것, 돈이 되는 것, 더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 그러나 특별함은 시시각각으로 그 기준이 바뀌고, 어떻게 쟁취할 수 있는지도 잘 모른다. 모르기에 우리는 가장 유력해 보이는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더 좋은 학교에, 더 좋은 직장에, 더 좋은 위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쓰여 있는 표지판을 지나쳐 힘겹게 걷는다.

 

하지만 늦게나마 알게 되는 것은, 그 길이 특별함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섬뜩한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가슴 속에 자신만의 감옥을 만들며 산다. 이해할 수 없고, 해소할 수도 없는 감옥은 특별해질 줄 알았던 자신이 소스라칠 만큼 새삼스러운 보통의 존재임을 자각하게 한다. 아니, 보통의 존재라면 차라리 다행일 것이다. 상황이 더 나쁘다면, 깨닫게 되는 것은 한없이 밉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밑바닥의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자신일 테니.

 

어쩌면 특별하다는 것은 그곳에 당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 서 있는 무언가를, 그리고 우리가 이미 그곳에 있음을 알고 있었던 무언가를 오롯이 재발견해낼 때 빛을 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의 마주침, 친절이 담긴 짧은 대화, 다시 만날 기약 없는 인사와 헤어짐, 그 뒤에 찾았던 그의 흔적, 또 다른 누군가가 남긴 인생의 흔적. 작가에게는 모험의 증거였지만, 우리에게는 스트레스를 선사하는 일상의 족쇄들이다. 너무 많은 사람, 너무 많은 정보, 너무 많은 말…. 그것은 아무런 특별함도 없는 것이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벌어진 낯선 모험 속에 등장했을 때 특별함으로 빛나 책으로 엮어졌다.

 

허무가 자신을 둘러싼 바깥의 것들을 쫓다가 발생한 것처럼, 치유도 자신을 둘러싼 바깥의 것들을 재발견할 때 시작된다. 다만, 작가에게는 아이슬란드라는 시공간이 중요했던 것처럼, 재발견을 돕는 계기와 사람이 필요할 뿐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들이었는지 깨닫다 보면, 한없이 초라했던 나의 실존이 가치를 지닌 채 재탄생한다. 그동안 이루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것들, 하지 않았다고 여겼던 것들,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이 가능성을 머금은 채 다시금 빛을 발한다.

 

아직 쓰이지 않은 책을 좋아해.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연재만화를 좋아해.
아직 다 만들어지지 않은 영화를 좋아해.
아직 녹음되지 않는 노래를 좋아해.
아직 시작하지 않은 말랑말랑한 상태의 연애를 좋아해.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내 인생을 좋아하지.

 

지금 다시, 이미 널리 알려진 아이슬란드 여행기를 읽어야 할 중요한 이유는 단 한 가지도 없다. 게다가 이 책은 누군가의 대화를 가장한 독백으로 점칠 되어 있고, 황량한 아이슬란드의 사진에서 온기를 느끼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제목처럼, 어쩌면 책을 읽다가 그동안 필요하지 않았던 위로를 만들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는 온다. 이미 지났어도 또 올지 모른다. 도망가고 싶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은, 약속 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의 노크가 들릴 때 이 책은 빛을 발한다. ‘너’의 의미는 ‘나’에서 나온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땅, 아이슬란드에서 했던 무수히 많은 독백 속에 담겨 있다.


WRITTEN BY
빵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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